[현장칼럼] 품위 있는 전직 대통령의 귀감
[현장칼럼] 품위 있는 전직 대통령의 귀감
  • 최창민
  • 승인 2015.08.31 0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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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민 (창원총국 취재부장)
2001년 8월 8일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부부가 진주시 명석면 외율리에 왔다. 1981년 대통령을 퇴임 한지 20년 만에 진주의 작은 시골마을 명석면을 찾아 온 것이다. 무주택 서민들의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1976년 미국의 밀러드가 창설한 ‘해비타트 운동’ 일환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지미카터 특별건축사업’을 진주에서 실천하기위한 자리였다.

당시 나는 지근거리에서 그를 취재한 뒤 이렇게 썼다. “단상에 파란 눈의 노부부가 모습을 나타냈다. 체크무늬 하늘색 티셔츠에 청바지차림에 가죽 혁띠, 모자만 쓰면 서부영화의 주인공이었다.” “연설이 시작됐다.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과 집조차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 18년전 이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희생이라고 생각했는데 할수록 나에게 축복이란 것을 알게 됐다.(중략)한국전쟁 때 해군장교로 참전했으며 지금도 한반도 통일을 위해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연설 끝에는 자원봉사자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러브 이즈 액션’(사랑은 행동하는 것)을 외치며 격려했다.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말미에는 이렇게 썼다. “사랑의 집짓기 운동에 참여하는 봉사자들을 격려하고 직접 참여하기 위해 불원천리 진주시 명석면 현장을 찾아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칠순의 나이에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왕성한 체력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땅콩농장주의 아들로 유명했던 지미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 후 세계 평화전도사로도 활약했다. 국제 분쟁지역을 돌며 빈곤과 질병 평화중재노력 등 해결사 노릇을 했다. 특히 북한의 핵확산 금지조약(NPT)탈퇴로 한반도에 일촉즉발의 전쟁위기가 고조되자 북한 방문을 실현, 김일성과 담판을 낸 것은 우리에게 직접적인 평화노력이었다. 이런 공으로 200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최근 그의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달 20일 미국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자신이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렸다. 한때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에게 간암이 뇌로 전이됐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기자회견동안 여유 있는 얼굴로 때론 농담도 섞어가며 보름 전 알게 된 자신의 몸 상태를 설명했다 한다.

이 자리에서 한말이 지구촌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멋진 삶이었다. 수천 명의 친구를 사귀었고, 신나고 흥미진진하게 기쁜 삶을 살았다. 이제 운명이 신의 손에 달려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남은 생에도 할 수 있는 만큼의 활동을 하겠다”고 했다. 임박한 죽음을 알리면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고 남을 위해 활동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자 지구촌 사람들의 뜨거운 반응이 나오고 있다. 사흘 뒤 열린 그의 강의장에 평소의 10배가 넘는 700명의 사람들이 몰리는가 하면 각 언론도 ‘품위 있는 전직 대통령의 귀감’으로 칭송하고 있다.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우리고장 명석을 찾아온 지 14년이 흘렀다.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사랑의 집짓기 현장을 지날 때 생각날 것 같다. 체크무늬 하늘색 티셔츠에 청바지차림을 한 서부의 사나이, 벽안의 대통령.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최창민 (창원총국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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