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전통예술축제 맛보기 (1)진주검무
경남전통예술축제 맛보기 (1)진주검무
  • 곽동민 기자
  • 승인 2015.09.17 11: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형보존이 가장 잘된 무형문화재로 주목받아
본보가 주최하는 제3회 경남전통예술축제가 10월 31일~11월 1일까지 이틀간 진주종합경기장 야외무대에서 열린다. 올해로서 세번째를 맞는 이번 축제에는 도내 18개 시·군 대표 전통공연이 무대에서 펼쳐짐으로써 경남의 전통예술문화 우수성을 지역민들에게 인식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남전통예술축제는 평소 접하지 못했던 우리지역 전통예술문화의 위상과 자부심을 동시에 느끼는 한마당축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본보에서는 경남전통예술축제 개막 한달여 앞둔 시점에서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도와 그 재미를 더하기 위해 이번 축제에 참여하는 전통공연팀의 유래·전승과정·작품 내용 등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 진주검무


<1>진주검무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는 8명의 무희(舞姬)가 춘다고 하여 진주팔검무라고도 한다. 현존(現存)하는 궁중계열의 무용 중에서 그 역사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궁중계열의 춤에서 지방 민속무용으로 변화되어 왔고, 예부터 여러 애국 행사에는 진주검무를 헌무(獻舞)로 올리는 것이 상례(常禮)였다.

무복(舞服)은 남색치마에 옥색회장 저고리를 입고, 치마를 걷어 사대(絲帶)로 맨 위에 전복(戰服)을 입으며 머리에는 조선시대 군모(軍帽)를 본뜬 전립(戰笠)을 쓴다. 춤의 처음은 칠색갑사로 된 색동한삼을 양손에 낀 한삼 평사위로 시작 되며 맨손 입사위로 이어지다가 본격적인 검무라 할 수 있는 칼을 사용한 칼사위로 마무리 하게 된다. 무구로 쓰이는 한 쌍의 칼은 다른 검무와 달리 목이 꺾이지 않는 칼을 사용하며 장단의 구성이 독특하고 춤사위가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우아하면서도 위엄이 있고 차츰 경쾌하게 이어지는 춤사위는 보는 이로 하여금 옷깃을 여미게 할 정도의 무게를 갖춘 춤으로 우리 무용사의 소중한 작품이다. 또한 진주 검무는 현존(現存)하는 무형문화재 중에서 그 원형(原型)이 가장 잘 보존된 춤이라고 학계의 평을 받고 있다.



◇특징

반주 장단이 다양하고 따라서 독특한 춤사위가 매우 다양하게 원형을 보전하고 있다. 무태가 꿋꿋하고 근엄하며 동작에서부터 표정이 이르기까지 전혀 꾸밈새가 없이 정중하고 아정하여 인위적인 교태를 허락지 않기 때문에 충분한 숙련이 쌓이기 전에는 이 춤의 묘미를 느껴볼 수 없는 어렵고 힘든 춤이다. 무검(舞劍) 칼의 목이 꺾이지 않는 직선이기 때문에 손목에 많은 힘이 들어간다.

시작 동작은 태산이 걸어가는 듯이 정중하여 숙연할 만큼 우아하고 엄숙했던 가락이 한삼을 벗어던지고 맨손 입춤에 접어들면 양손은 깍지떼기와 아울러 태극의 음양을 그리면서 끝없는 곡선을 그려내다가 방석돌이에 접어들면 천지의 기운을 몸 안에 안아 채웠다가 다시 쏟아 내는 동작은 우주와 내가 합일된 기운을 느낄 때 무위의 율려가 몸안에서 일어남을 체감한다. 마지막 하이라이트를 이루는 연풍대 가락은 마치 제비떼가 바람을 타고 나는 모습처럼 쾌활 발랄하며 싱그럽고 상쾌한 관경이다.



◇작품 내용

진주검무는 도드리장단에 늘어서서 느릿하고 장중하게 한삼을 뿌리며 춤을 추다가 한삼을 빼어 놓고 맨손을 뿌리며 입춤사위로 추다가 이윽고 엎드려 숙인사위로 어르며 앉은사위로 춤을 추다가 땅에 놓았던 칼을 양손에 갈라지고 씩씩한 타령 장단에 칼을 좌우사위로 휘두르며 방석돌이로 돌아가며 장쾌하게 칼춤을 춘다. 이처럼 도드리장단에서 시작해 타령곡 및 타령곡의 속도로 변화시킨 여러 곡이 사용된다.

이처럼 반주장단이 다양하고 따라서 화사하고 독특한 춤사위가 많다.

진주검무의 공연은 한삼평사위-배맞추기-숙인사위-뿌릴사위-쌍어리-결삼사위-맨손입춤(깍지떼기)-맨손쌍어리-등맞추기-방석돌이-삼진삼퇴-자락사위-앉은맨손사위-앉은칼사위-위엄사위-연풍대(겨드랑, 옆구리, 양칼, 외칼)4가지-대형풀기 등의 순으로 이어진다. 시작 동작은 태산이 걸어가는 듯이 정중하여 숙연할 만큼 우아하고 엄숙했던 가락이 한삼을 벗어던지고 맨손 입춤에 접어들면 양손은 깍지떼기와 아울러 태극의 음양을 그리면서 끝없는 곡선을 그려내다가 방석돌이에 접어 들면 천지의 기운을 몸 안에 안아 채웠다가 다시 쏟아 내는 동작은 우주와 내가 합일된 기운을 느낄 때 무위의 율려가 몸안에서 일어남을 체감한다.

마지막 하이라이트를 이루는 연풍대 가락은 마치 제비떼가 바람을 타고 나는 모습처럼 쾌활 발랄하며 싱그럽고 상쾌하다.

진주검무는 원형은 25분이지만 10분, 15분으로 재구성이 가능하다. 무용수는 8명이 기본이지만, 무대에 따라 16명으로 구성된 쌍검무로 이루어지며 악사들의 생음악으로 연주를 한다.



◆유래

진주검무를 포함한 검무의 경우 원래 민간에서 가면무로 행해지던 것을 기록상으로는 조선 정조 때 궁중정재로 채택하여 오늘날까지 전승되는 춤이다. 궁중검무는 각지방에 설치되었던 교방청의 기녀들이 뽑혀 올라가 궁중에서 무희로 춤을 추다가 낙향하게 되면서 각 지방에 설치된 교방청에 전승되어 지역에 따른 여러 종류의 검무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 민속무로 나타나는 검무의 형태다.

진주검무는 춤의 연출형식과 춤가락, 칼 쓰는 법 등이 옛 궁중의 것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민속춤으로 전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궁중의 색채를 지녔다는 것이 진주검무의 또 다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진주검무가 다른 검무와의 차이점은, 대부분의 검무가 4명으로 추어지는데 반하여 진주검무는 8명으로 연희된다는 점과 예전의 원형을 따라 목이 꺾어지 않은 칼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진주검무는 우리의 전통춤 가운데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데 연출형식이나 춤사위, 농검(弄劍)등의 면에서 상당히 수준 높은 예술적 가치를 지닌 무형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오늘의 진주검무는 진주 교방 출신 최순이가 고종 때에 궁중 무희로 있다가 고향인 진주에 돌아와서 진주권번에 전해준 것이 오늘의 진주검무가 있게 된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진주교방에서는 최순이보다 훨씬 이전부터 검무가 추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중후기 학자인 다산 정약용의 시문집에 포함된 ‘검무편’에서 진주에서 감상했던 검무의 역동적인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산은 촉석루에서 진주기생들이 추는 진주검무를 보고 그모습을 시로 찬미해 후세에 전하고 있다. 또 대한제국 말의 애국시인 매천 황현은 그의 ‘매천야록’에서 진주명기 산홍이 검무를 잘 췄다는 기록도 남기고 있다.

 
▲ 진주검무


◆전승 과정

현재의 진주검무가 전승될수 있었던 중요한 역할을 한 이는 진주 교방 출신 최순이(1892~1969)다. 진주의 관기로 있다가 선발돼 궁중으로 들어가 장악원 기생이됐다. 1902년 혹은 1903년 무렵 궁중으로 들어가서 고종 41년(1904)부터 순종때까지 궁중 무희로 있다가 다시 진주로 돌아왔다.

장악원에서 지낸 3년 동안 궁중에서 익혔던 궁중정재는 이후 진주권번에 다양한 레퍼토리를 제공했고 궁중과 비슷한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북평양 남진주라는 명성을 지니게 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 되면서 대한제국의 옛관제가 폐지됨에 따라 진주감영이 없어졌고 아울러 교방기구도 해산됐다. 국권 상실 후 진주교방의 후신인 일본인 감독하에 다시 기생조합형태로 유지되는데 여기에서 최순이는 1918년부터 후배를 양성했다. 당시 제자중에는 진주검무 최초의 선구자였던 이윤례, 김자진, 서상달, 강귀례, 최예분, 이음전 등이 있었고 일제말 진주권번이 유명무실할 때까지 그녀에게 검무를 배운 제자로는 김순녀(김수악) 등이 있었다.

최순이는 기생조합과 권번에서 검무를 비롯한 여러가지 기무를 전수시켰고 그것이 광복과 더불어 빛을 보게돼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12호로 지정받게 됐다.

당시 11명이 천거 됐지만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사람은 8명 서상달, 김옥주, 강귀례, 김자진, 이윤례, 최예분, 이음전, 김순녀 등이다. 여기에 최순이가 빠진 것은 의외였지만 예능보유자 확정할 당시 이미 활동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 않았었나 추론하고 있다.

전수 1기생 성계옥은 1978년 6월20일 보유자로 인정받았고, 정필순은 1982년 보유자 후보로 선정됐으나 작고했다. 이후 여러 보유자들이 작고하면서 현재 정금순, 유영희, 김태연 3명이 보유자로 활동하고 있다. 정금순은 2001년 보유자로 지정돼 현재 명예보유자로 이어오고 있으며, 유영희와 김태연은 2010년 보유자로 인정받아 활동하고 있다.

 
▲ 진주검무


<진주 검무를 만드는 사람들>

△예능보유자 : 정금순(명예보유자), 김태연, 유영희 △전수조교 : 조순애(해금), 강광근(대금) △이수자(악사): 박설자(장고), 김행자(집박), 하일선(좌고), 김정희(피리), 박순애(피리), 안귀남(해금), 변정숙(아쟁), 고덕룡(대금), (무용)=남정희, 정영숙, 김영숙, 김삼순, 안숙녀, 김덕순, 김혜옥, 한순자, 김소형, 조선희, 양지선, 성지혜, 송선숙, 송임숙, 원혜정, 손혜정, 김태덕 외 다수 △전수자 : 김해경, 황현순, 박현진, 강재휴, 고덕룡, 이연복, 김경미, 김지윤 외 다수

자료·사진 제공=진주검무보존회

곽동민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