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전통예술축제 맛보기 (6)남해 화전매구
경남전통예술축제 맛보기 (6)남해 화전매구
  • 차정호 기자
  • 승인 2015.10.01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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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전으로 이어 내려온 농민들의 옛 풍물놀이
경남전통예술축제 맛보기 (6)남해 화전매구
 
남해 화전매구


1694년경(미상) ‘남해화방사중매구패’가 최초 연희집단을 구성해 활동한데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지는 남해 화전매구는 농촌에서 농경을 하는 순수한 농민들로 구성돼 있다.


◇ 남해 화방사중매구패의 형성시기

남해 화전매구의 전신인 ‘화방사중매구패’가 존립했던 화방사는 진각국사 혜심이 고려 신종 5년(1202)에 중건한 고찰(靈藏寺)로 사찰의 역할을 다 하다가 선조 25년(1592)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그러나 인조 16년(1683)에 서산대사 제자 계원(戒元)과 영철(靈哲) 두 선사에 의해 복건 되었지만, 영조 16년(1740)에 다시 소실되는 불행을 안게 된다. 그렇지만 불력으로 중창되었다. 화방사에는 강희 33년(1694)에 제작된 나발과 발라가 현존하고 있고, 탈을 만든 토형(土型)이 화방사에서 채집되어 본 사찰에 ‘화방사중매구패’가 있었음을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남해 화방사는 임진왜란과 큰 화재로 사찰이 2번이나 소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불력과 보시와 희사 등으로 막대한 재산이 축적되었는데, 이러한 부의 축적에 매구패의 역할도 매우 컸다고 보아지며 걸립(乞粒)은 사찰이 재난을 입어 막대한 재산을 잃었을 때, 사찰을 다시 건립(建立)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남해화방사중매구패’는 영남지역의 대표적인 민속연희집단으로 활동이 왕성하였으며, 남해지역은 물론 낙동강, 섬진강, 남강 주변에서 성행한 오일장 등에서 합천 밤마리 대광대패, 진주솟대쟁이패, 하동남사당패와 더불어 활발하게 연희활동을 하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화방사는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재건되어 영조 49년(1773)에는 화방사 전답이 27결 91부 3속이라는 부유한 사찰로 성장하였으며, 남해에 33개의 원(員 화방사 부속관리기구)이 있었다.

◇ 관련 문헌

▲ 화방사 소장 유재나팔과 유재 발라

화방사에는 현재 강희 33년(1694)에 제작된 유제발라(鍮製발羅)와 유제나팔(鍮製喇叭)이 보존되어 있다. 규모를 볼 때, 유제발라는 직경이 55.4cm로 2벌이 소장되어 있고, 또 하나는 유제나팔(鍮製喇叭)로서 길이는 78.5cm이며, 구경은 14.5cm이다. 정확한 사용 용도는 알 수 없으나 매구패 악기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 망운산 화방사 중창서

망운산 화방사 중창서(重創序 1744년, 1767년 개서(改書)에, “(전략)이에 대서특필한 스물다섯 글자 중에서 매귀(埋鬼)의 교묘함으로, 대업황제궁(大業皇帝宮)의 금수(錦繡) 장식을 재단하여 무동(舞童)에게 입혀서 북을 쳐서 쟁인(錚人)들을 내보내고, 장삼을 걸친 화주승(化主僧) 자감(自甘)은 인인군자(仁人君子) 앞에서 합장하여 권선(勸善)하고, 현승(賢僧) 민색(敏색)은 또 동서남북의 마을마다 차수(叉手)하여…”

▲ 후송 유의양의 남해문견록

영조 47년(1771)에 남해로 유배된 후송 유의양(後松 柳義養 1718~1788)의 ‘남해문견록’에 “남방 풍속이…여거사(女居士)들이 무리지어 다니며, 놀음하여 동냥하는 것이 무수(無數)한지라, 읍내 집집마다 다니며 북치며, 염불(念佛)소리하고 놀음하면, 마을 사람들이 굿을 보며 돈과 쌀을 낱낱이 주어 ‘염불을 더하라!’하여 아침부터 밤이 되도록 그치는 때 없고,”

▲ 무인 제사창 중창기문 병서

‘무인 제사창 중창기문 병서(戊寅第四創重創記文幷序 1818)’에, “징(澄)공이 말하기를 ‘보광전은 예전 그대로 보수하기로 하고,…이에 북을 쳐서 대중을 모으고, 그 사유를 갖추어 진술하였더니, 가득 모인 승려들이 같은 목소리로 모두 승낙하였다.

▲ 정상박이 주장하는 집단 오광대의 전승지는 남해군 대곡리

정상박(동아대 명예교수)은 송석하(宋錫夏 1932년 조선민속학회 창립임원)가 1930년대에 “일방초계율지(一方草溪栗旨)대광대, 의령신반(宜寧新反)대광대, 하동(河東)목골사당, 남해화방사(南海花芳寺)매구 간에는 유기적 관계가 존재하는 모양이다”라고 했다.

 
화전매구 실내가락 연습

◇ 유래

현존 ‘남해화전매구’는 화방사중매구패와는 관련이 없는 듯 기록이나 구전되는 바가 없어 아쉬움을 남기고 있지만, 구전되는 풍습은 대부분 기록이 없다. 그러나 그 지역의 구전은 무언의 전승이므로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남면 석교리에 거주한 상쇠 고(故) 김태우가 증언하기는 화전매구 전승자는 남해군 남면 석교리 한석동(1866. 8. 6~1943. 9. 30)으로, 남해 매구 12채박을 유일하게 보유한 기능자이며, 그 이전의 계보는 알 수 없다고 한다. 한석동은 둘째아들인 한회포(1884. 3. 23~1952. 8. 12)에게 매구를 전수시켜 계승시켰고, 다시 가락과 춤사위를 남면 죽전리에 거주한 한점식(1909. 12. 15~1965. 8. 14)에게 전수했는데, 한점식은 한회포와 한경수(1885. 10 .19~1947. 9. 20)로부터 또 다시 매구 일부분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화전매구의 전승은 한석동→한회포→한점식→서면계열 전찬기→박희오로 전수되었다. 현 이수자로 활동하고 있는 기능자는 박삼영, 박기홍, 김창렬, 이긍기, 이나경, 이우심 등이다.

그렇지만 ‘남해화방사중매구패’의 가락과 복식, 잡색 중 진사, 각시, 포수, 조리중은 그 모양이 전해지지만, 승무, 탈춤, 무동의 원형을 발굴치 못했다. 고증지도를 맡은 정의연과 이긍기 보존회장이 조사연구와 기능지도에 심혈을 기우리고 있다.

◇ 구성과 가락

기본 구성원(34명)은 대표기 1명, 농기 1명, 령기 2명, 쇠 3명, 징 2명, 장구 5명, 북 7명, 소고 9명, 잡색 4명(진사, 각시, 포수, 조리중)이며, 순서는 모움굿→질굿→당산굿→문굿→진굿→질굿거듭나기굿→정기입굿→성주·조왕굿→지신밟기굿→새미굿→춤굿→덧배기춤굿→사채굿→개인다드래기굿→덩덕굿→호우굿→판굿→종굿으로 18마당을 이룬다.

 
총무 장영주,회장 이긍기,국장 이우심

◇ 화전매구 회원명단

회장 이긍기(상쇠), 부회장 박동귀(잡색), 사무국장 이우심(12발), 총무 장영주(장구), 신태성(쇠), 신홍식(징), 최원태(징), 윤희엽(북), 정정해(북), 채명석(북), 한계선(북), 강재우(북), 최명옥(북), 박연순(장구), 김서애(장구), 안희명(장구), 구남효(소고), 김정준(소고), 김영근(태평소), 김춘성(포수), 정정심(양반), 전경자(각시), 양순자(조리중), 차민영(령기), 류승조(령기), 김효준(대표기), 강영희(농기), 김정식(잡색)

사진·자료 제공=남해화전매구보존회
남해/차정호기자



 
남해화전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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