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야기] 통일벼 이야기
[농업이야기] 통일벼 이야기
  • 경남일보
  • 승인 2015.10.11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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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광 (경남남도농업기술원 작물연구과 벼담당)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린 시절에는 쌀이 부족해서 보리쌀이 섞인 혼식을 강요하던 때가 있었다.

1960년대 우리쌀의 생산량은 10a당 300㎏정도에 불과해서 요즘 쌀 생산량의 60% 수준에 불과했다. 그 당시 국정의 최우선 정책과제는 쌀의 자급이었다. 그러면 언제부터 어떻게 우리 쌀이 이렇게 남아도는 세상이 된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쌀 생산에 있어서 일대 변혁을 일으켰던 ‘기적의 볍씨, 통일벼’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벼는 크게 동북아에서 재배하는 자포니카(Japonica)형과 태국 등 열대지방에서 재배하는 인디카(Indica)형으로 구분한다. 자포니카형은 쌀이 둥글고 찰기가 있지만, 인디카형은 낟알의 길이가 길고 밥에 찰기가 없는 특징이 있으나 수확량은 자포니카에 비해 월등히 많다. 이 때문에 1920년대부터 자포니카와 인디카의 교배를 통해 밥맛도 좋으면서 수량성도 우수한 품종을 만들려는 노력이 일본에서 있어왔다. 하지만 인디카와 자포니카는 유전적으로 먼 종끼리의 교배로 인하여 불임의 문제가 있어서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이러던 참에 1964년부터 2년간 필리핀의 국제미작연구소에서 품종실험을 해오던 허문회 서울대 교수가 자포니카와 인디카의 중간 종을 먼저 자포니카와 교배한 뒤, 그 품종을 다시 열대지방의 기적의 볍씨 품종으로 알려진 IR8호라는 인디카에 교배하는 삼원교배를 실시해서 불임성의 문제가 해결된 새로운 형질의 종자 IR667을 얻었다. 이렇게 만든 종자를 우리나라로 가져와 하절기는 수원에서 동절기는 비행기로 다시 필리핀으로 날아가 선발과 채종과정을 거치며, 그 당시로는 보기 드문 왕복육종(shuttle breeding) 과정을 통해서 13년이 걸리는 육종기간을 7년으로 단축하며 마침내 1971년 통일벼가 탄생하게 된다. 정부는 쌀의 증산을 위해 대대적인 행정력을 동원하여 통일벼를 확대 보급하였고 마침내 1976년 쌀의 100% 자급률을 달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단기간에 걸친 통일형 품종의 확대보급은 냉해에 취약하고 병해충도 약한 약점이 노출되면서 전국적으로 문제가 되었다. 더욱이 퍼석퍼석한 밥맛으로 인해 소비자가 외면하면서 통일형 품종은 점차 재배현장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통일벼는 어려웠던 쌀 부족 문제를 극복한 녹색혁명의 주역이었고 오늘날 품질 좋고 수량도 많은 쌀 품종 육성의 밑거름이 되었다. 최근 쌀 산업은 소비감소와 수입개방 등으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쌀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분들이 녹색혁명을 이루었던 지혜와 역량을 다시 집중해서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김영광 (경남남도농업기술원 작물연구과 벼담당)

 
김영광 경남남도농업기술원 작물연구과 벼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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