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 홀로 서 있어도 자기 그림자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경일포럼] 홀로 서 있어도 자기 그림자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 경남일보
  • 승인 2015.10.04 10: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용배 (남부산림자원연구소장)

인간의 본능과 물질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현대사회에서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하고 그에 따른 경쟁을 부추기면서 성장해 왔다. 이러한 체제의 유지 논리인 공리주의나 실용주의가 낳은 실리주의가 우리 현대인의 삶의 기준이 된 것이다.

‘청백리(淸白吏)’란 말이 있다. 청빈한 생활 태도를 지키고, 벼슬길에 나가서는 나라를 위하여 힘을 다하는 ‘봉공(奉公)’의 자세를 흩뜨리지 않으며, 부모의 마음으로 백성을 어루만지는 선비, 즉 마음이 청렴하고 결백한 관리(官吏)를 가리키는 말이다. 과거에는 이런 청렴한 관리들에게 보상은 물론 여러 우대를 하였는데, 이는 오늘날에도 청백리상 시상 등으로 이어질 만큼 공직자의 청렴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실리주의 사회에서 생활하면서 자기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명분주의를 강요당하고 있다. 즉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내 가족, 내가 속해 있는 집단이나 조직에 득이냐 독이냐의 현대적 판단기준뿐만 아니라 이것의 명분 여부까지를 고민해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번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대한민국의 청렴도가 얼마나 높은가를 관찰하는 실험이 시작됐다. 대한민국의 부정부패와 적폐(積弊·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관행, 부패, 비리 등의 폐단)가 획기적으로 근절되는 결과를 가져올지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필자는 ‘왜 이와 같은 법이 명문화되는 지경에 이른 것인가?’라는 부끄러움 속에서 조선시대의 문신 박수량(朴守良·1491~1554)의 백비(白碑)가 문득 떠올랐다.

박수량은 1546년(명종 원년) 청백리에 올랐던 인물로 ‘시호도 주청하지 말고, 묘 앞에 비석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로 청빈한 삶을 살았다. 장례도 치르지 못할 만큼 빈곤하였기 때문에 나라에서 장례를 치러주었는데, 이때 그의 청백한 행적을 글로 찬양한다는 것이 오히려 누가 될 수 있다 하여 글을 쓰지 않고 상징적으로 백비를 세우도록 했다고 전한다.

박수량의 묘는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에 자리 잡고 있는데, 당대는 물론 후세에도 귀감이 되는 청백리의 상징적 유물로서 그 의미가 깊다. 백비를 통해 살아서도 세상을 떠나서도 청빈하려 했던 조상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중국 북제(北齊)시대 유주(劉晝)의 ‘유자신서(劉子新書) 신독(愼獨)’ 편에 ‘독립불참영 독침불괴금(獨立弗慙影 獨寢不愧衾·홀로 서 있어도 자기 그림자에 부끄러움이 없고, 홀로 잘 때도 자기 이불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이라 하였다. 즉 박수량의 백비와 같이 순수하게 자기 자신의 행동에 책임진다는 말로, 청렴을 위한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수신(修身)의 참뜻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독립불참영’을 지금 사회에서 요구하는 청렴과 결부시켜 보려 한다. 내 그림자에게까지 부끄러움 없는 공직자로서의 깨끗한 생활을 지켜 나간다면, ‘김영란법’ 같은 어떠한 청렴도 실험도 필요치 않으리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박용배 (남부산림자원연구소장)

 

박용배소장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