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칼럼]‘헬조선’의 백성이 되겠습니까?
[대학생칼럼]‘헬조선’의 백성이 되겠습니까?
  • 경남일보
  • 승인 2015.10.11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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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경상대학교 신문사 편집국장)
올 들어 정치적 의견이 활발하게 오가는 온라인 공간에서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이용자 간의 정치적 성향이 명확하게 나뉜다고 평가되는 사이트에 이 말만은 공통적으로 사용되면서, 이제는 언론매체까지 헤드라인 속에 ‘헬조선’을 쓰는 경우도 하나둘씩 나타났다. 주로 답답한 사회현실에 대한 이삼십대 청년들의 분노가 ‘지옥’이라는 뜻의 ‘헬(hell)’을 나라의 옛 이름에 붙여 사용하게 했다. 기성세대들은 이 말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사용하기에 ‘자학적인 표현’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옥이라는 말 뒤에 붙은 조선을 보면 한 번쯤 생각하게 되는 점이 있다. 신분제도가 극명하게 나타났던 조선의 구성원은 양반과 백성이었다. 노비와 백정과 같은 천민을 제외한 양인들만이 과거에 응시해 나라의 크고 작은 일을 맡을 수 있다. ‘누구나 죽창 앞에서는 한방이다’라며 ‘헬조선’과 함께 사용되는 ‘죽창’은 동학농민운동 당시 농민군들이 사용했던 무기였다.

반면 청년들이 ‘헬조선’이라 일컫는 대한민국의 구성원은 백성이 아닌 시민이다. 시민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자기 주도적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 정부조직에 종사할 이들을 선발하는 공무원시험은 과거제가 효시이기는 하나 이제는 고졸자라면 누구나 치를 수 있다. 또한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는 죽창과 농기구 대신 ‘참정권’, 특히 ‘선거권’이 있다.

그러나 청년들은 기성세대로부터 ‘정치는 어른들의 일’이며 ‘일단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배웠다. 학습된 무력감에 선거권이 있어도 투표소에 가지 않는다. 많은 청년들이 ‘답이 없는 이 나라에서 떠나고 싶다’고 말한다. 여기가 아닌 그곳에서 접시라도 닦아서 성공할 자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헬조선’에서만큼은 한결같이 ‘노동자들을 갉아먹는다’는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구경도 못 해본 나라의 말을 매일같이 외우고 있다.

삶의 영역에서 다양한 선택권이 있음에도 ‘나라가 망했다’라며 자포자기할 수밖에 없었던 청년들의 분노에 대해 기성세대들은 반드시 주목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마찬가지로 청년들은 죽창을 든 헬조선의 ‘백성’이 아닌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해야할지 주체적으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다.
이지훈 (경상대학교 신문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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