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의 역학이야기]개천예술제
[이준의 역학이야기]개천예술제
  • 경남일보
  • 승인 2015.10.15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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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 축제가 막을 내렸다. 아름다운 진주 남강의 밤은 이제 그렇게 끝이 났다.

열네 살 때 개천예술제 유등을 들고 긴 행렬을 지어 진주 시내 밤길을 재잘거리며 걸었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헤아려 보니 그게 벌써 오십 일곱 해 전의 일이다.

그때의 설렘은 지금도 마음에 아스라이 남아 있는데 지금은 감흥이 예전만 같지 못하다. 숱한 세월의 바람에 내가 그만큼 무디어진 탓일까?

일전에 기고한 충(衝)과 충(沖)의 패러독스에서 염려하였던 바 유등축제 유료화에 대한 우려는 시행결과 그저 하나의 기우(杞憂)에 불과하였다고 하니 천만다행이라 하겠다.

돌이켜보면 우리 겨레의 역사에서 가을에 여는 축제는 한가위와 더불어 풍요롭고 넉넉한 한마당이었다. 축제로 어울리는 한마당은 하늘에 감사를 올리는 추수감사의 제천(祭天)의식과 더불어 정치적 공동체를 결속하는 동맹의식의 장이었다.

고구려의 ‘동맹(東盟)’, 부여의 ‘영고(迎鼓)’, 동예(東濊)의 ‘무천(?天)’, 삼한(三韓)의 ‘농경의례(農耕儀禮)’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겨레정신을 바탕으로 개천예술제는 1949년 영남예술제라는 이름으로 개최되었다. 개최 당시 창제 취지문은 ‘독립된 1주년을 기리 아로새기고 엄연하게 되살아난 겨레의 아우성과 마음의 노래와 그 꽃의 일대 성전을 사도 진주에 이룩하여 젊은 전 영남의 정신으로 개천의 재단 앞에 삼가 받들기를 뜻하는 바이다’라며 겨레정신과 예술혼을 천명하였다.

또 진주 개천 예술제 ‘제2의 창제 취지문’에서도 “아득한 옛날부터 우리 겨레는 시월에 하늘 굿을 올리고 노래와 춤으로 신명을 풀어 왔으나 포학의 사슬은 굿판을 덮고 겨레의 신명을 앗아 갔다”며 겨레 정신을 면면히 이어 오고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유등축제의 유료화는 이러한 겨레정신과는 맞지 않는다는 시민들의 쓴 소리와 흰소리가 축제의 여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모든 시민들이 참여하여 ‘민족정신’과 ‘예술혼’을 상기하여야 할 대동제의 제전에 돈을 받는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혹은 개천예술제는 돈을 받지 않았고 유등축제만 유료제를 실시하였기 때문에 이 둘을 섞어서 말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있지만 묘하게도 유등축제 개천예술제 진주시민의 날 행사 일정이 섞여 이어졌기에 ‘꼼수’라는 비아냥도 있다.

어떻든 행사진행에 막대한 돈이 드는데 국비지원은 줄어들었고, 시민들의 바람은 크고, 행사규모는 축소하기 어려워 유료화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는지는 모른다. 또 경영행정과 기업가적 정부의 개념으로 정부기관이나 자치단체에서 돈벌이 하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이 되는 추세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부기관의 본질적 기능인 공공성과 민주참여의 가치를 시장의 논리인 돈에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씁쓰레하기는 하다.

사계절 열두 달에서 가을은 신유술(申酉戌)이며, 가을의 끝은 모든 것을 지키는 술(戌, 음력 9월)이다. 술에서 모든 확산과 팽창, 발전과 성장의 세월이 마무리된다. 그래서 술은 결실의 달이기도 하다. 술은 개이며 개는 도둑이나 낯선 이들의 침입을 경고하며, 생산과 삶의 밑바탕이 되는 소(丑)와 양(未)을 한 가운데서 지키는 충성스러운 수호동물이다. 그리하여 축술미(丑戌未) 삼형의 시운(時運)에서는 지켜야할 가치를 지키지 않고, 새로운 것을 무분별하게 시작할 때 예기치 않게 구속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축술미 형에서는 반드시 구설(口舌)이 분분하다.

이런 술에서 모든 것을 갈무리하여 다음으로 조상신이 깃드는 해월(亥月), 음력10월)로 꺾어져 표변하는 것이 세월이다. 그리 장(藏)의 세월을 시나 새로운 일 년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사람은 가더라도 세월은 쭉 이어진다.

자 이제 올해의 축제는 접고 더욱 희망찬 내년을 기약하자.

 
[이준의 역학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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