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우려스럽다
[여성칼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우려스럽다
  • 경남일보
  • 승인 2015.10.15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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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순 (전 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나에게 1970년대 후반은 암울했던 시기로 기억되고 있다. 20대 초반에 흔히 겪게 되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병석에 눕게 되신 어머니에 대한 걱정이 개인적으로 나를 짓누르는 암울함이었다면, 유신 말기 정권의 압제가 온 사회를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었던 것은 사회적인 암울함이었다. 계엄령이나 위수령 발동으로 학교에는 걸핏하면 휴교령이 내려졌었고, 부산, 마산 등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는 시위와 그에 대한 진압 소식이 연일 보도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로부터 지금까지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은 크게 변했다. 특히 경제적이고 물질적인 변화는 눈부실 지경이다. 이런 변화를 보면서, 한때는 물질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민주화가 어느 정도 정착되고 우리의 삶과 관계, 그리고 인간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왔다고 믿었었다.

그런데 2015년 현재, 힘겹게 쌓아 온 민주화와 합의를 순식간에 그 암울했던 70년대로 되돌리는 일들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 그 중 두드러지는 사건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이다. ‘국정교과서’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는 ‘통합교과서’, ‘올바른 교과서’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부름으로써 반발을 누그러뜨리려 하고 있으나 그것은 한갓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려는 이유에 대해 정부는 ‘역사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하나의 시각으로 발행되는 교과서가 어떻게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한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오히려 정부관계자 자신들의 역사관, 시각을 한국사 교과서에 반영하여 일률적으로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주입하려는 그들의 속내를 상상하는 것이 더 쉽다.

국정화가 필요한 이유로 제시하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엉뚱하기까지하다. 8종의 한국사 교과서가 있어서 학생들의 수능 공부에 혼란을 준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학생들에게 한국사를 가르치는 근본적인 이유가 시험에 통과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 논리는 국정화의 이유가 될 수 없다. 다만 우리 국민 모두를 시험에 목을 맨 사람들로 보는 저열한 시각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세계가 발전하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세상은 점점 다양한 시각을 존중하는 쪽으로 변화해가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왜 한사코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고 뒷걸음질 치려고 하고 있는지 마음 답답한 일이다. 외국의 교수들이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강의를 해보고는 많이 놀라는 것이, 한국의 대학생들이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한다.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진 우리 학생들의 모습이 그들에게는 많이 낯선 모양이다.

사회의 발전과 창조적인 변화는 다양한 시각이 질문과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그 질문과 논쟁을 통해서 서로 충돌하고 조정하고 합의할 때 일어난다.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시대에 다양성이 없다면, 그리고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사회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국민적 저항이 거셈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12일 결국 국정화 계획을 발표하고 ‘중·고등학교 교과용 도서 국·검·인정 구분(안)’을 행정예고했다. 관심을 놓지 말고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강문순  (전 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여성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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