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야기 담긴 느티나무 아래서 마을의 안녕 기원
창원퇴촌농악은 일반적인 두레농악과는 달리 매귀안택축원(埋鬼安宅祝願)의 축원걸립농악(祝願乞粒農樂)을 그 특징으로 한다. 즉 나쁜 귀신을 몰아내고 이로운 신을 받아들여 가정의 평온을 축원하기 위한 농악이다. 이 때문에 굿의 시작과 끝머리에 당산신께 고하는 당산굿과 신령을 위로하는 서낭제의 형태를 강하게 띠고 있다. 이런 연유로 퇴촌농악은 두레굿과는 달리 서낭굿 성격이 강한 걸립굿으로도 볼 수 있다. 여타의 다른 지방 농악에 비해 창원퇴촌농악의 가장 뚜렷한 특징 중의 하나가 굿의 시작과 끝머리에 당산신께 고하는 당산굿과 신령을 위로하는 영산다드레기굿, 사방께 고하는 사방오토놀이굿 등에서 보이는 당산제의 형태를 강하게 띠고 있다는 것이다
◇ 유래
창원퇴촌농악에는 ‘불목하니’에 대한 전설이 얽혀 있다. 창원시 퇴촌동(현 사림동)의 ‘창원의 집 앞’ 느티나무에 얽힌 전설을 토대로 이루어졌다.
전설에 따르면 창원군 상남면 봉림리 뒷산 북시골(부처골)에 위치한 봉림사(鳳林寺)에서 생긴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당시 개산(開山) 진경대사(眞鏡大師)가 있었던 곳으로 유명한 봉림사는 신라 제 49대 효공왕(孝恭王) 때 전국에서도 이름높은 구산선문(九山禪門) 중의 한 고찰이었다. 이 절에서 잡일을 보던 ‘불목하니’는 그곳에서 함께 일하던 여자부목(불목하니)을 사랑하게 됐다고 한다. 이를 시기한 젊은 스님들이 여자부목을 쫒아냈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이 사실을 알게된 불목하니는 그 처녀를 그리워하며 눈보라 속에서 여자부목을 찾아 헤매다가 실족하여 죽고 말았다. 그때 불목하니가 몸을 의지하며 짚고 있었던 지팡이가 이듬해 무성한 느티나무로 자라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전설이 깃든 느티나무(수령 360여년)는 퇴촌마을의 당산목으로 숭앙받게 되었는데, 이 느티나무가 있는 퇴촌마을에는 주로 순흥 안씨가문이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고 한다. 순흥 안씨가문에서는 해마다 정초에 이곳에서 잡귀를 몰아내고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풍물굿을 해왔는데 이것이 창원퇴촌농악으로 전승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작품 내용
창원퇴촌농악은 14개 순서로 굿이 진행된다. 먼저 ▲당산굿을 시작으로 ▲질굿 ▲사방선고굿 ▲진몰이굿 ▲쟁끼놀음굿 ▲돌림굿 ▲협동굿 ▲사방굿 ▲팔방굿 ▲호호굿 ▲풍류굿 ▲축원굿 ▲.날당산굿 ▲사방인사굿 순으로 진행되면서 마을의 안녕과 번영, 풍년을 기원한다.
◇전승과정
이러한 조상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전통풍물을 새롭게 다듬고 가꾸어서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과 신명을 즐기고자 1978년에 창원퇴촌농악보존회가 창단되었다. 창원 퇴촌농악은 매귀안택기원설의 축원 걸립농악으로 정착하게 되어 그 기능이 전수되어 왔으며, 1986년 2월 창원소리마당이 창단되어 39명의 회원이 가락 음률을 연수해 오던 차 황일태 창원퇴촌농악보존회장이 그 사실을 더듬어 짜임새 있게 놀이를 정립시켜 오늘의 재현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리고 창원퇴촌농악보존회에서는 정기공연을 통하여 전통과 현재의 삶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무대예술로 승화시키고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2011년에는 그동안 한 번도 전체 판굿이 연희된 적이 없는 창원퇴촌농악 판굿 14마당을 복원하여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또한 우리 문화를 창원시민들과 함께 향유할 수 있도록 각 마을 순회 국악공연 및 풍물교실도 개최하고 있다. 그리고 창원의 농악을 전국 및 해외에 알리고자 여러 농악경연대회 및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고 해외공연활동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창원의 잊혀져가는 민속놀이, 풍물가락을 발굴 및 재현하며 조상들의 숨결이 깃든 우리놀이 문화를 올바르게 계승 발전시키고자 꾸준히 노력한다는 계획이다.
◇창원퇴촌농악을 만드는 사람들
△태평소:김국배 △상 쇠:황일태 △부쇠:정종두 △징:장목호·김경자 △북:강법윤·부영진·이민우·이돈근·심성보·이옥남 △장구:조정출·황효순·서용수·강미숙 △상모:황주식·김신엽·이찰라·진현우·정승하·김선성·박현영·이태호
자료·사진 제공=창원퇴촌농악보존회, 이은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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