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 (10)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 (10)
  • 경남일보
  • 승인 2015.10.19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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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 (10)
 
집에서 어머니가 오거나 하다못해 주인댁에서 새 옷을 사주어도 그냥 넘어 가지를 않았다. 그러나 아르바이트하랴 학업을 계속하랴 바람개비처럼 휘돌다보니 꿈을 꾸는 것도, 언니가 보고 싶은 애틋함도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그리고 꿈에서 무엇을 느끼고 위안을 받는다기보다 현실적인 노력형이 되어 눈에 보이는 무엇에만 집착하여 구체화시키데 신경을 곤두세웠을 뿐이다.

양지는 허적허적 골목길을 되내려왔다. 다녀오세요. 아버지를 위한 무슨 용품이라도 사러가는 줄 아는지 인사를 남긴 새댁의 뜀박질이 콩콩콩 언덕 위의 층계로 멀어졌다.

양지는 가겟집여자가 아직도 일하고 있는 부식가게를 지나 내처 걸음을 옮겼다. 가슴 밑바닥에서 무언가 치받아 올라 목젖을 짓눌렀다. 아버지가 오셨으니 얼마나 좋겠어요? 저는 작년에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가셨지 뭐예요. 아버지 같은 남자 아니면 결혼 안한다고 했는데……. 지금도 아버지가 강옥아, 내 이름을 부르며 찾아오실 것 같애요. 엄마가 시샘할 정도로 아버지랑 더 가까웠거든요. 결혼을 일찍한 것도 다 이유가 있어요. 신랑이 아버지를 꼭 닮았거든요. 직업이나 학력 같은 건 아무 것도 따지지 않았어요. 상대방의 기색은 눈치 채지 못하고 조잘조잘 늘어놓던 새댁의 음성이 귓전에서 앵앵거렸다. 양지는 기어코 하수도에다 고개를 꺾었다. 잘게 삭다만 음식물들이 시큼한 냄새를 풍기며 꾸역꾸역 넘어왔다.

-2막-

양지는 한동안 부엌문을 바라보며 움직이지 않고 서있었다. 담 너머 골목의 먼 가등에서 건너 온 옅은 불빛에 뒤틀린 경첩을 디룽디룽 매단 부엌문이 옴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을 줄 알면서도 깊이 팬 미간이 풀리지 않았다. 물리적이고 집요한 공략을 받아 마침내 함락 당하고만 성채, 상처입고 죽은 부하의 시체를 목격하는 것처럼 양지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양지는 지그시 어금니를 물었다.

[그래 아빠야, 라면 끓여 올께. 기다리고 있어]

바글거리는 텔레비전 소리와 함께 옆방 문이 열리고 교태스런 비음을 흘리며 새댁이 나온다. 양지는 얼른 부엌으로 몸을 감추었다. 베니어판 가리개 옆에서 새댁의 콧노래와 찬장문 여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푸르르 진저리를 치던 형광등이 기세 좋게 활개를 펼친 뒤에야 불기도 없이 맨자그리한 방바닥에 웅크리고 누워있던 아버지가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하이고, 니 왔고나]

부신 눈을 비비며 딸인 것을 확인한 아버지는 과장스런 몸짓으로 털고 일어나 앉았다.

[살폿 잠이 들었던 갑다. 지끔 몇 시나 됐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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