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 (11)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 (11)
  • 경남일보
  • 승인 2015.10.25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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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 (11)

방문을 열자 훅 끼쳐 온 낯선, 아니 까마득한 옛 기억을 되살리는 고약한 체취에 어찔 일어나는 현기증을 삭이고 있던 중이었다. 말대답은커녕 짜증이 왈칵 솟았다. 마늘 안주를 곁들여 곤죽이 되도록 마신 막걸리 냄새가 이랬었다. 발곱만 대강 닦아내고 신었던 양말 냄새도 이랬던 것 같다. 소금기를 남기고 땀이 증발한 옷에서도 그런 냄새는 났었다.

조금도 위축되는 감 없이 당당하고 위세 좋게 하던 하품 속에서도 쿠리하게 풍겨 나오던 악취. 양지는 구석에 있는 선풍기를 꺼내서 틀까하다가 차마 그렇게까지 표를 낼 수는 없어 창문을 열었다. 굳이 시간이 궁금해서라기보다는 대면이 면구스러울 때 아버지가 잘하는 말 부침인 걸 알기 때문에 대답 대신 흘깃 책상 위의 시계를 보았다. 열두 시가 가까웠다.

[야도 참, 야기가 찬디 웬 창문은 열어 쌓노.]

중얼거리며 몸을 웅크리고 앉은 아버지가 다시 말을 건넸다.

[막차로 갈라캤는디…, 장천 이리 늦게 댕기나?]

[일이 있으면 더 늦을 때도 있죠]

딸이 입을 열자 기회를 놓칠세라 아버지는 재빨리 토를 달았다.

[하기사 책임자가 됐시니…….]

양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 혼자 묻고 혼자 답한 모양새가 되었다. 그나마 대화가 끊기자 아버지는 흠, 흠, 몹시 곤고한 헛기침 소리를 냈다. 이어붙일 마땅한 말이 찾아지지 않아서일 터였다. 가는 목을 힘주어 추켜세우자 세모꼴의 삐죽한 턱이 난삭 되바라지며 머쓱한 표정을 받쳐 올린다. 서슬에 낡은 뿔테 안경이 빛을 되쏘고 안구 없는 오른 쪽 눈자위가 음험한 그늘을 드러낸다. 얇고 작은 귓바퀴에 걸린 누런 안경테가 실로 매어있는 것도 보인다. 그 뿐 아니다. 부숭하게 뒤엉킨 반백의 머리털이 주름투성이의 뒷덜미 위로 불결하게 늘어져 있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늦게 오셨더라구요?]

묻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그러나 감정은 의식을 배반했다. 하나 둘 꺼져가는 도회의 불빛을 내려다보며 많은 생각과 아울러 다스린 감정이건만 출렁이는 격정은 좀체 가라앉지를 앉는다. 양지의 속셈을 읽지 못한 아버지는 셈바른 어조로 재빠르게 응답을 했다.

[응, 정냄이한티 좀 댕기 오니라꼬]

양지는 흠칫 놀라며 아버지를 쏘아보았다. 딱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저 교활함이라니. 정남이를 어디서 만났는지 따져서 묻고 싶었다. 이빨에 눌린 아랫입술이 몹시 아팠다. 영문 모르는 아버지는 접힌 책상다리를 끌어당겨 더 도도하게 허리를 펴며 발가락 부위를 더듬는다. 따갑게 쏘아보는 양지의 시선을 피하며 주눅 들린 기색을 숨기려 외면을 했다. 양지는 시치미를 뗐다.

[걘 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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