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 (12)
[그으래, 니가 그리 잘 돌봐주는 디 잘 안있으모 되겄나]
정남이는요. 양지는 입술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분노를 말과 함께 억눌렀다. 아픔에서 아버지를 보호하려는 게 아니라 제외시키고 싶은 것이다. 목젖이 꺽세게 부풀었다. 언니가 잘해 주니까 잘 있으리라는 너무나 당연한 추측.
동화 속의 아이처럼 아버지의 옷을 비집고 엉덩이꼬리를 찾아보고 싶었다. 베 매는 풀이 말라 손이 거칠어졌을 뿐 나는 니 에미다, 어흥. 하긴 언제 내가 무슨 기대를 했던가. 양지는 과민하게 대처했던 감정을 누르며 딴전을 피우는 심정으로 우유 팩 하나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밥 될 동안에 이거라도 드세요]
빨대 꽂은 우유를 내밀자 질겁하듯이 꽁무니를 빼며 두 손을 내젓는 아버지.
[아아, 일없다. 내가 운재 그런 거 묵더나]
양지가 우유 든 손을 거두어들이지 않자 골탕 먹지 않으려는 아이처럼 아버지의 얼굴이 찡그려 졌다. 살 없는 피부가 식은 죽의 거죽처럼 늘어진 작은 얼굴이 강파르게 경직되며 미세한 경련을 일으켰다. 뜨거운 불방망이가 양지의 가슴을 헤집고 지나갔다. 왜소하고 초라한 늙은 화상. 그의 이름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이, 그의 모습이 고작 그 모양이라는 것이 너무 싫었다. 생명 없는 흉상이라면 눈앞에서 얼른 걷어치워 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더욱 채근했다.
[그래도 빈속으로 계시는 것보다는 나을 거 아입니꺼]
[헛 거참, 헛 거참]
가파른 콧날로 하얗게 지어 올리던 노기를 누그러뜨리며 마지못해 받아든 우유팩이 아버지의 손에서 떨어질 듯이 쳐졌다.
[이거 무우모 두드리기 난다닝깨. 저엉 글타쿠모 차라리 술이나 한 잔 묵고 말자. 인자사 밥은 뭔 놈의 밥을 하노]
방법을 생각해 낸 아버지의 목소리는 짐짓 생기를 찾고 당당해진 동작으로 방바닥에다 아예 우유를 내려놓았다. 양지의 시선과 눈이 마주치자 움찔 하더니 우유를 다시 집어 들며 말을 고쳤다.
[많이는 안 묵는다. 진짜 에나다. 입 반성 열 번해도 실천 안 하모 실없다 싶어서 딱 짤라 끊는다 소리는 좀체 입에 안올린다만 끊은 기나 진배없다. 인자 몸도 깨성해졌고, 생기는 술 밀치자니 사는 낙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고 해서 쬐꼼썩, 영판 쬐꼼썩, 삐가리 눈물 정도, 술이 아무리 개천 맹키로 흔천해도 한 잔 이상은 안 묵는다. 내 말이 정 안 믿기거등 운재 니 에미한테 물어봐라. 근력이 전만 못한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또 술 무울 돈이나 있나]
아버지의 음성은 어느덧 애원성으로 변해갔다. 양지는 더 들을 필요를 느끼지 않고 부엌으로 내려갔다. 뒤로 문을 닫으며 몸을 벽에다 휘청 기댔다. 심장을 받치고 있던 줄기가 발 아래로 미끄러져 내렸다. 가라앉히려는 노력 없이 아까 그대로 맞닥뜨렸다면 지금 어떤 사태가 벌어져 있을는지. 허망함이 부풀어 가슴을 메웠다. 평소에 가졌던 뿌듯한 성장감도 별무였다. 저 주제꼴 초라한 아버지에게 나들이 옷 한 벌 해 입힐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상한 간장을 회복시킨다는 약 한 재 못 지어 드릴 형편도 아니면서….
[그으래, 니가 그리 잘 돌봐주는 디 잘 안있으모 되겄나]
정남이는요. 양지는 입술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분노를 말과 함께 억눌렀다. 아픔에서 아버지를 보호하려는 게 아니라 제외시키고 싶은 것이다. 목젖이 꺽세게 부풀었다. 언니가 잘해 주니까 잘 있으리라는 너무나 당연한 추측.
동화 속의 아이처럼 아버지의 옷을 비집고 엉덩이꼬리를 찾아보고 싶었다. 베 매는 풀이 말라 손이 거칠어졌을 뿐 나는 니 에미다, 어흥. 하긴 언제 내가 무슨 기대를 했던가. 양지는 과민하게 대처했던 감정을 누르며 딴전을 피우는 심정으로 우유 팩 하나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밥 될 동안에 이거라도 드세요]
빨대 꽂은 우유를 내밀자 질겁하듯이 꽁무니를 빼며 두 손을 내젓는 아버지.
[아아, 일없다. 내가 운재 그런 거 묵더나]
[그래도 빈속으로 계시는 것보다는 나을 거 아입니꺼]
[헛 거참, 헛 거참]
가파른 콧날로 하얗게 지어 올리던 노기를 누그러뜨리며 마지못해 받아든 우유팩이 아버지의 손에서 떨어질 듯이 쳐졌다.
[이거 무우모 두드리기 난다닝깨. 저엉 글타쿠모 차라리 술이나 한 잔 묵고 말자. 인자사 밥은 뭔 놈의 밥을 하노]
방법을 생각해 낸 아버지의 목소리는 짐짓 생기를 찾고 당당해진 동작으로 방바닥에다 아예 우유를 내려놓았다. 양지의 시선과 눈이 마주치자 움찔 하더니 우유를 다시 집어 들며 말을 고쳤다.
[많이는 안 묵는다. 진짜 에나다. 입 반성 열 번해도 실천 안 하모 실없다 싶어서 딱 짤라 끊는다 소리는 좀체 입에 안올린다만 끊은 기나 진배없다. 인자 몸도 깨성해졌고, 생기는 술 밀치자니 사는 낙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고 해서 쬐꼼썩, 영판 쬐꼼썩, 삐가리 눈물 정도, 술이 아무리 개천 맹키로 흔천해도 한 잔 이상은 안 묵는다. 내 말이 정 안 믿기거등 운재 니 에미한테 물어봐라. 근력이 전만 못한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또 술 무울 돈이나 있나]
아버지의 음성은 어느덧 애원성으로 변해갔다. 양지는 더 들을 필요를 느끼지 않고 부엌으로 내려갔다. 뒤로 문을 닫으며 몸을 벽에다 휘청 기댔다. 심장을 받치고 있던 줄기가 발 아래로 미끄러져 내렸다. 가라앉히려는 노력 없이 아까 그대로 맞닥뜨렸다면 지금 어떤 사태가 벌어져 있을는지. 허망함이 부풀어 가슴을 메웠다. 평소에 가졌던 뿌듯한 성장감도 별무였다. 저 주제꼴 초라한 아버지에게 나들이 옷 한 벌 해 입힐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상한 간장을 회복시킨다는 약 한 재 못 지어 드릴 형편도 아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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