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시 사봉면 방촌리 등건마을에 위치한 ‘모순 정려비’가 지난 10월 29일 제595호 경남도 지정문화재로 지정됐다.
모순 정려비는 1632년(인조 10) 조선 전기의 문신 모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다. 모순은 진주모씨로 호는 절강으로 알려졌다. 현재 후손으로는 전 진주시의원을 지낸 모용조씨 등이 있다.
모순은 조선 1417년(태종 17)의 식년친시 병과에 급제, 사간원의 사간을 지냈으며, 세조 때 진주로 내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모순은 지극한 효성으로 유명했다. 모친상을 당했을 때 상여가 강을 건너지 못하는 것을 보고 통곡하니 흐르는 물이 멈췄다고 전해진다. ‘절강’이라는 호도 이때 생긴 것이다.
이같은 모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중종 때 효자 정문을 세우고 1632년(인조 10)에 정려비를 세웠다.
정려비는 직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비신을 얹고, 사모 형태의 지붕돌을 이고 있다. 비의 제목은 ‘효자통정대부행좌사간모순지비’다.
정려비는 조선시대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던 효를 널리 권장하고자 세운 것으로, 유교의 근간인 삼강오륜을 백성에게 널리 알리고자 했던 조선의 국가적 정책을 엿볼 수 있어 역사적 사료로 가치가 높다.
곽동민기자 dmkwak@gnnews.co.kr
모순 정려비는 1632년(인조 10) 조선 전기의 문신 모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다. 모순은 진주모씨로 호는 절강으로 알려졌다. 현재 후손으로는 전 진주시의원을 지낸 모용조씨 등이 있다.
모순은 조선 1417년(태종 17)의 식년친시 병과에 급제, 사간원의 사간을 지냈으며, 세조 때 진주로 내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모순은 지극한 효성으로 유명했다. 모친상을 당했을 때 상여가 강을 건너지 못하는 것을 보고 통곡하니 흐르는 물이 멈췄다고 전해진다. ‘절강’이라는 호도 이때 생긴 것이다.
이같은 모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중종 때 효자 정문을 세우고 1632년(인조 10)에 정려비를 세웠다.
정려비는 직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비신을 얹고, 사모 형태의 지붕돌을 이고 있다. 비의 제목은 ‘효자통정대부행좌사간모순지비’다.
정려비는 조선시대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던 효를 널리 권장하고자 세운 것으로, 유교의 근간인 삼강오륜을 백성에게 널리 알리고자 했던 조선의 국가적 정책을 엿볼 수 있어 역사적 사료로 가치가 높다.
곽동민기자 dmkwak@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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