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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63)<123>2015년 남강문학회에서 만난 문인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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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05  21: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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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한영탁(영덕 출신, 부산 동아고 졸업)은 지난 호에서 언급한 대로 진주에서 학교 다니거나 진주에서 살아본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진주에서 문학 성장통을 앓으며 중고교를 다니지 않은 사람으로 유일한 남강문학회 회원이다.

그는 6·25참화가 한창이던 1951년 시골 영덕중학교에 입학한 직후 집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면소재지 5일장 마당에서 새로 창간돼 나온 손바닥만한 잡지 한 권을 발견했다. 한글판 ‘리더스 다이제스트’였다. 전쟁통에 읽을거리에 목말라하던 그에게 그 책은 정보의 보물섬이었다.이 책에서 그는 어떤 미국인 종군기자의 일대기를 읽었다. 그 전기는 히틀러의 유럽 정복 양욕으로 발발된 제2차 세계대전에 개입하기를 꺼리는 미국의 여론을 움직여 참전 쪽으로 기울게 하는 데 한몫을 한 기자의 스토리였다.

나치의 폴란드 침공으로 서막이 오른 전쟁은 곧 프랑스와 영국의 참전을 불러오면서 유럽 전역을 전화로 불타게 했다. 그러나 영국의 절박한 구조 요청에도 대서양 건너의 미국은 강 건너 불 보듯했다.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나치의 세계 정복 흉계를 잘 알고 히틀러의 광기를 증오하면서도 고립주의를 고수하려는 의회와 여론에 발목이 잡혀 고작 무기와 식량원조만 하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 무렵 ABC방송의 어니 파일 특파원은 독일 공군기들의 무차별 폭격으로 불타고 있는 런던거리를 마이크를 들고 이리저리 뛰면서 나치의 잔학성과 비전투원인 민간인에 대한 학살과 파괴를 생생히 중계하는 전파를 미국에 날려 보냈다. 불붙어 넘어지는 빌딩과 방공호로 달려가는 사람들 속을 누비면서 전하는 그의 보도는 미국 시민들의 나치에 대한 반감과 적개심을 불러 일으켜서 여론이 참전 쪽으로 돌아서게 만드는 데 큰 몫을 했다. 얼마후 41년 12월 7일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자 루스벨트는 대일 선전포고를 하고 곧이어 히틀러의 나치에 대해서도 선전포고를 했던 것이다.

한영탁은 이 전기를 읽고 나서 쩌릿한 감동에 사로잡혔다. 그때 그는 커서 저널리스트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1960년대 언론계 입문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1964년 12월 이후 그는 9전 10기로 대한일보 제6기 수습기자 최종 합격 통지를 받았다. 수습후 외신부 기자로 배치되었다. 문학 연극 영화 미술분야를 좋아하는 편이라 사회부나 문화부를 기대했으나 영문과를 나온 사람이므로 외신부로 배치된 것이었다.

매일 텔레타이프와 씨름하는 그의 외신부 기자생활은 시작되었다. 외국 통신의 기사를 번역하고 외국신문, 잡지 등을 뒤적여서 해설 기사나 해외화제라는 걸 쓰는 일은 따분했지만 한 번 외신부로 들어가면 다른 부서로 옮기는 일은 힘들었다. 대한일보에서 2년간 근무하고 그는 조선일보 외신부로 옮겨 앉아 4년을 지냈다. 그뒤 그는 AFP통신에 이어 AP,로이터 통신 등 4대통신과 특약을 맺어 외신 기자를 충원하던 합동통신 외신부로 가게 되었다.조선일보에 있을 때 한국외신기자회가 조직되었고 거기서 그는 사무국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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