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 (25)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 (25)
  • 경남일보
  • 승인 2015.11.02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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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 (25)

옷 한 벌을 마련하기 위해 거의 한 달의 생활비를 바치는 따위의 경제관념을 그녀는 배제해 왔다. 대금 지불은 자신이 맡겠다는 사장의 호의도 결국 자존심을 차압당한 부채임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밖으로 나와서 찬 공기를 접하는 순간 막혔던 숨통이 일시에 트이는 것 같았다. 양지는 빠른 걸음으로 번화가의 골목으로 몸을 숨겼다. 치밀하게 장치 되어있는 포획의 미로에 빠져들었다가 상대방의 술책을 먼저 간파하고 찰과상 하나 입지 않고 탈출해 나오는 도망자의 심정이 이럴까. 궁지에다 결박시켜 놓았던 고민거리를 해결해 치운 것처럼 양지는 너무 평안하고 상쾌했다.


<3>

습관은 체질이고 체질은 곧 습관이다. 집에 와서 옷을 갈아입는 순간부터 깨자분한 기분은 되살아났다. 정밀한 앙금이 되어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형체를 알 수없는 울음 같은 것, 분노 같은 것. 손윗사람의 단순하고 다정한 호의조차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의 좀스럽고 열등감 찬 소갈머리를 양지는 환멸해 마지않았다. 현미경 실험을 한 미생물학과 초년생이 물질에 대해 처음 느끼는 실망처럼 양지는 사회의 정체에 대한 기피증을 자신이 갖고 있음을 안다. 차마 확인하기 두려워서 꽁꽁 싸둔 물건은 때가 되기 전에는 절대 들여다보아서 안 되는 것을.

습관적인 걸음에 실려 집까지 온 이상 습관 된 일상을 수용하는 것은 당연하겠지. 하지만 그것은 또 뜻대로 되어주지 않았다. 생기가 죽 빠져나가 버린 듯 전신에 기운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건조해있는 부엌의 썰렁함을 체감하고서야 부엌을 통과하게 되어있는 산동네의 책상보만한 작은 자취방, 일상 용품들이 포개지고 늘어 놓여 진 무미건조한 둥지. 양지는 눈을 비벼가며 시야를 방해하고 혼란시키는 현미경 렌즈에서 벗어나려 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내 삶을 사랑해야 한다. 나마저 변질되면 내 생활은 절망뿐이다. 어제처럼 그제처럼 나는 그렇게 내 앞만 바라보고 살아야한다. 나는 나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모든 것을 다 껴안고 책임져야한다는 은연중의 책임감에서 벗어나 확실한 주제파악으로 나를 지켜야한다. 잡다한 상념 속에 오래 잠수해 있는 것도 덕 될 것은 없다.

지는 머리를 내젓고 갈아입던 옷의 나머지 단추를 채웠다. 그러나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이유로 미스 김과 자신이 비교 당했다는 불쾌함이 고개를 들었다. 인사도 없이 그곳을 빠져 나오고 난 후 사장과 그의 친구가 지었을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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