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3 (30)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3 (30)
  • 경남일보
  • 승인 2015.11.1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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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3 (30)

하지만 기를 쓰고 대학을 다닌 것은 남들 따라 빈곳을 채우는 한 동작이었지 학문을 계속한다는 구체적인 동기도 목표도 없었을 뿐더러 기계공장에서 대학 학력 같은 것은 봉급 산정을 하는데 별스러운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 깨달음을 얻은 후로 양지는 은근히 명자언니의 재력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300평이 넘는 대지에 건평 85의 이층 양옥은 초등학생인 어린 아들 하나만을 데리고 살기에는 언제 봐도 필요 없는 낭비와 허세였다. 떳떳치 못한 사생활을 보호 격리하듯이 한적한 곳에다 지은 집인데 지금은 그것마저 도시개발의 여파를 타고 눈덩이처럼 가치가 불어났다.

도심의 번화가에도 임대해 준 빌딩이 있고 상가의 점포도 여러 개 있으며 고향에도 논밭이며 야산을 수 없이 사놓았다. 부의 가치는 운용에 있지 타인에게 과시하거나 격을 상실한 쓰임새로 전락해서는 인격을 해칠 뿐이라는 것을 명자는 상관하지 않았다. 돈은 쓸 줄 아는 사람에게 주어져야한다는 아쉬움은 명자언니를 대할 때마다 양지가 받게 되는 스트레스였다.

그러나 명자언니가 연변에 생존해 있다는 할아버지로 인해 품고 있던 뜻만 내비치지 않았다면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고 돈 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엿보는 좋은 장소로 여전히 드나들었을 집이었다.

명자언니의 집은 대문을 들어서면 머리 위에서 쓰윽 정원수들이 내려다보았다. 몰라보게 쑥쑥 커버린 나무들 속에서 배릿한 부토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며 몰려들었다. 눈향나무 옥향 영산홍 등의 관목이 도열하듯 늘어서 있는 구불구불한 층계가 눈앞에 높이 떠있다.

언덕 위의 하얀 집. 유행하던 가요에 매혹 되어있던 명자언니의 소원대로 명자언니의 남자는 공임 걱정 말고 최고의 정원으로 만들라고 주머니 끈을 팍팍 끌렀다. 미로처럼 구불구불하게 만들어진 자연석의 높은 계단 위에서 질감 좋은 긴치마를 바람에 하늘거리며 내려다보는 명자언니는 안짱다리를 한 작은 키라든가, 주근깨투성이의 몽땅한 얼굴의 이미지는 벗겨 내버린 허물처럼 간 데 없이 그 작은 키마저 귀염스럽고 복스러운 귀부인이 되어있다. 높푸른 하늘도 그녀의 머리 위에서 넓고 큰 광배처럼 그녀의 존재를 달리보이게 한다.

그녀는 이제 담장 위로 뱀이 기어 다니던 오두막집의 당골네 딸 명자가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한쪽으로는 우듬지만 총총하게 내려다보이는 깊은 잡목의 수림이 수해처럼 아득히 펼쳐져 있고 또 한 쪽으로는 도회의 끝자락이 아스라이 다가오고 싶은 그리움의 손길처럼 뻗어 와있던 이층에서 양지는 감회 어린 표정의 명자언니와 밖을 내다보며 나누었던 대화들을 상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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