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3 (31)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3 (31)
  • 경남일보
  • 승인 2015.11.24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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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3 (31)

그때는 그녀의 작고 단단한 몸매까지 어쩜 그렇게 야무지고 꾀스러워 보였을까. 양지는 그때 중요한 일은 핵심부터 간파하는 것 같은 명자언니의 작은 눈을 찬탄 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일 미터 오십 센티도 채 안 되는 저 작은 몸 어디에 그런 기지가 숨어있었던 것일까. 이럴 때 ‘기지’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썩 적합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녀의 인생전환은 기지에 의한 반전이라고 밖에 달리 정확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았다.

공장뜨기로 잔뼈가 굵어 그 밥에 그 나물인 그렇고 그런 남자와 결혼을 해서 역시 그 나물에 그 밥인 그런 생활만 하다 인생을 마칠게 뻔한 것이 명자언니 그녀가 소지하고 있던 인생의 자산이었다. 눈곱만큼의 의심 없이 판단 내릴 수 있는 것이 그렇고 그런 집의 딸자식들이 숙명으로 지고 나온 사주팔자였던 것을 주위의 여러 예들은 충분히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런 속설을 증명이나 하듯이 사람들의 입에서는 고난에 시달리다 못한 당골네 딸이 자살을 했다는 소문이 한동안 나돌았다. 그런데 잠잠해졌던 당골네 딸 명자의 이야기가 다시 소문이 되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넘쳐흐르게 된 것은 그로부터 십 년 후였다.

당골네 딸 명자, 그 죽었다던 아이가 삐까뻔쩍하는 자가용을 타고 왔더라. 왔으면 그냥 온 게 아니라 지어먹을 만한 땅뙈기를 사서 그것도 노동력이 없는 부모 힘들지 않게 소작을 주는 배려까지 했고 공장에 다니거나 남의 집 고용살이로 힘겹게 살고 있는 동생들을 제 밑으로 모두 불러 올렸다더라. 공부할 시기에 있는 동생들은 학교에 넣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가진 기술대로 학원 수강을 더 시키거나 자영할 점포를 사주었다는 것이다. 벼락부자 행세를 하는 그녀의 행적을 의심한 지서에서 혹시 불온 단체와 연결되어 있지나 않나 몰래 뒷조사까지 했더랬다.

그때 명자언니는 비장한 음성으로 양지에게 말했었다. 사람은 가난할 때 가난이 가진 양분을 먹으면서 자란다. 가난 속에 잠재한 그 풍부한 자양이 무엇인지 양지는 명자언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데친 풋나물처럼 시그러져 드는 새벽잠을 쫓아가며 하루 종일 어둡고 냄새나는 공장 밑바닥을 긴다고 해도 일당은 뻔했어. 그나마 몸이라도 아파 하루 결근을 하면 썩은 무 잘리듯 가차 없이 뭉텅 이삼 일치의 노임이 잘려. 공휴일도 쉬지 않고 특근 잔업을 한다고 아무리 나대봐야 월급이라곤 항상 우리들 인생을 사기 당한 듯 기분 잡치는 액수 아냐. 집에 좀 부치고 나면 적금 하나 삐져 넣기도 항상 빠듯했지. 먹는 것 입는 것 다 줄인다 해도 그 모양인데 마른버짐이 핀 얼굴에 크림 한 통은 언제 사 바를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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