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청렴사적지 통영충렬사를 다녀와서
[기고] 청렴사적지 통영충렬사를 다녀와서
  • 경남일보
  • 승인 2015.11.29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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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민수 (국립3·15민주묘지관리소)
▲ 국립 3·15민주묘지관리소 기민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조선시대 임진왜란에서 우리민족을 구한 이순신 장군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청렴하고 강직한 삶을 몸소 실천한 공직자이기도 해서 이번 청렴사적지로 통영 충렬사를 다녀왔다. 통영 충렬사는 이순신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으로 임진왜란이 끝난 8년 후인 1606년 제7대 수군통제사 이운룡이 장군의 충절과 위훈을 기리기 위해 어명을 받아 건립한 사당이다. 조선시대 후기 1868년 대원군이 전국에 서원 철폐령을 내릴 때에도 보존돼 그 맥을 이어왔으며 일제강점기에는 1919년 관청의 지원이 중단되자 지역주민들이 뜻을 모아 ‘충렬사 영구보존회’를 조직해 향사와 관리를 했다. 1951년 재단법인 통영충렬사를 설립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해설사로부터 이순신 장군의 강직함과 청렴에 관한 일화를 들었다.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에 속해 있는 발포라는 지역에서 만호라는 벼슬을 하고 있을 때 일이다. 직속상관인 전라좌수사 성박이 이순신에게 심부름꾼을 보냈다. “좌 수사께서 무슨 일로 자네를 보내셨는가?” “심부름꾼은 발포 진영 뜰에 있는 오동나무를 베어 오라고 하십니다. 좌 수사께서 워낙 풍류를 즐기시는지라….” 이 말을 들은 이순신은 나라가 위급한 상황에 거문고를 만들어 풍류를 즐기려고 한다며 발끈했다는 것이다. 심부름꾼으로부터 전후 사정을 전해들은 전라좌수사가 이를 갈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는 일화다.

지금 현 상황에 비춰보면 이순신 장군처럼 인사권을 쥐고 있는 상사의 명을 단호히 거절할 수 있는 공직자가 있을까 싶다. 또한 난중일기를 보면 “장부로서 세상에 태어나 나라에 쓰이면 죽기로써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이순신 장군의 강직한 소신이 나타난다. 통영 충렬사에서 참배를 마치고 나오며 오늘날 우리 공직자에게도 이순신 장군의 소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기민수·국립3·15민주묘지관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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