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3 (35)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3 (35)
  • 경남일보
  • 승인 2015.11.24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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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3 (35)

언니, 나 똥개도 무서워하는 것 알잖아. 그제야 명자언니는 창, 창, 개의 이름을 부르며 머리를 쓰다듬어 진정 시켰다. 그리고는 크게 뜬 눈으로 양지의 얼굴을 더듬으며 호들갑스럽게 나무랐다. 여태도 밥 굶고 다니니? 이게 뭐냐. 온 몸에 눈뿐인 게 똑 질라재비 겉다. 뼈하고 까죽뿐이다. 그렇게, 명자언니랑 그렇게 언제까지나 그렇게 다정하게 살아갔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양지는 지금 존재의 허무에 빠져있다. 대저 생명이란 무엇이며 핏줄이란 무엇인가.

‘뻐꾸기 알지? 그 놈, 그 잡아 죽일 놈, 남의 둥지에다 제 알을 낳아 남의 것을 독차지하며 자라게 한다는 새 말이야. 나도 이제야 그게 그런 샌지 알았다만 그 새가 그렇게 우리하고 연관이 깊은 줄 짐작이나 했나. 언니는 그걸 어떻게 알아? 증거 있어? 너도 참 어리석다. 증거라니? 증거를 대라고? 증거가 있었다면 이런 억울한 일은 생기지도 않았지. 그렇지만 너네 고조할아버지가 무서워서 드러내 놓고 말은 밖으로 안내서 그렇지 고향 사람들 나이 든 사람들은 다 우리 두 집 일을 알고 있었다더라. 절차가 까다롭고 노병이 심해서 얼른 못 오시는 대신 할아버지 말씀을 녹음하고 비디오라도 찍어달래야 되겠다’

양지는 발끝으로 시선을 떨군 채 방으로 돌아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명자언니는 따져보면 남이 아닐 것 같은 저 혼자만의 이유로도 친절하고 다정했다. 어리광 섞인 양지의 투정을 친언니처럼 무람하게 받아주고 위로도 해주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명자언니는 가슴속에 맺힌 한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돈 많은 하인이 양반족보를 사서 양반 행세를 하는 것쯤은 책으로도 연속극으로도 흔히 접했던 옛날 일들이었다. 명자언니네와의 관계에 막상 그런 내력이 연계되어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양지는 놀라움보다는 올 것이 왔다는 필연적인 어떤 감회에 맞부딪쳤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인 명자언니 아버지를 일없이 헐뜯고 눈엣가시처럼 보기 싫어하던 아버지의 행태. 쌓여있던 의문이 비로소 확연해졌던 것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답게 여기지 않는 양지네의 성장과정을 아는 명자언니였으므로 양지까지 싸잡아서 탓을 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양지네의 굴복을 받고 싶은 한 서린 감정은 새록새록 뼈를 키우고 있었던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이제 명자언니는 가난하고 무식하던 그 옛날의 명자가 아니었다. 무식하고 못난 것 때문에도 결코 기죽지 않을, 얕잡아 보아서 안 될 능력인 부를 움켜 쥔 것이다.

나를 저토록 안달나게 불러서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걸까. 경로를 거쳐서 도착한 비디오를 보여주며 족보를 내놓으라고 족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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