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3 (36)
유세장에 모여든 청중들의 표밭을 갈퀴질할 최상의 건수로 이용될 될 것도 뻔했다.
어느 날 명자네 거실에서 본 기철이는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있었다. 첫눈에 기철이를 알아본 것은 아니었다. 그 동안 이 여자는 무엇을 했을까. 언뜻 보기에 별로 달라진 것이 눈에 뜨이지 않는 명자언니네의 거실을 한 눈에 훑어보며 양지는 그런 생각을 했다. 비디오가 같이 장착되어 있는 대형 텔레비전, 오토메이션 응답기 등 몇 가지만 신제품으로 바뀌었을 뿐 졸부의 전시용품이 역력했던 장중하던 독일제 오디오, 벽난로 옆 벽에 걸려있는 사냥총, 무소뿔 술잔, 살촉과 전통이 멋있게 장식 된 양궁, 사냥에서의 전리품을 그대로 박제시켜 놓은 듯한 오소리며 고라니, 꿩, 아프리카의 코브라, 호랑이 가죽 걸개 등은 옛날 그대로 위치마저 변함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주체할 수 없는 세월의 흐름으로 약간 낡아 보이기는 할망정 오히려 그것마저 만만찮은 기품으로 형성되어 이제는 누가 보아도 졸부 된 여자의 과시용 장식물이었다는 것을 눈치 채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옷감을 잘라 제 몸에 맞는 옷을 만들 듯 명자언니는 주위의 상황들을 하나하나 제 것으로 만드는데 능숙함도 갖추고 있었다. 수영, 에어로빅, 등산, 고전무용, 창 부르기 등을 조금씩은 익혀서 친구도 많고 여러 방면에 걸쳐 제법 해박한 상식도 갖추고 있었다. 그들의 성장은 결코 그것만은 아니었다. 뒤늦게야 기철의 존재를 발견했던 것이다.
“앉아라. 왜 그러고 섰니?”
양지의 눈치를 살피다 젊은 남자의 얼굴 위에서 둘의 시선이 엉키는 순간 어이없다는 듯 요란스럽게 명자언니의 웃음소리가 꺄르르 터져 나왔다.
“내가 젊은 애인이라도 불러들인 줄 알았던 모양이지? 잘 봐라 누군지. 기철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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