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3 (36)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3 (36)
  • 경남일보
  • 승인 2015.11.2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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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3 (36)

유세장에 모여든 청중들의 표밭을 갈퀴질할 최상의 건수로 이용될 될 것도 뻔했다.

어느 날 명자네 거실에서 본 기철이는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있었다. 첫눈에 기철이를 알아본 것은 아니었다. 그 동안 이 여자는 무엇을 했을까. 언뜻 보기에 별로 달라진 것이 눈에 뜨이지 않는 명자언니네의 거실을 한 눈에 훑어보며 양지는 그런 생각을 했다. 비디오가 같이 장착되어 있는 대형 텔레비전, 오토메이션 응답기 등 몇 가지만 신제품으로 바뀌었을 뿐 졸부의 전시용품이 역력했던 장중하던 독일제 오디오, 벽난로 옆 벽에 걸려있는 사냥총, 무소뿔 술잔, 살촉과 전통이 멋있게 장식 된 양궁, 사냥에서의 전리품을 그대로 박제시켜 놓은 듯한 오소리며 고라니, 꿩, 아프리카의 코브라, 호랑이 가죽 걸개 등은 옛날 그대로 위치마저 변함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주체할 수 없는 세월의 흐름으로 약간 낡아 보이기는 할망정 오히려 그것마저 만만찮은 기품으로 형성되어 이제는 누가 보아도 졸부 된 여자의 과시용 장식물이었다는 것을 눈치 채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옷감을 잘라 제 몸에 맞는 옷을 만들 듯 명자언니는 주위의 상황들을 하나하나 제 것으로 만드는데 능숙함도 갖추고 있었다. 수영, 에어로빅, 등산, 고전무용, 창 부르기 등을 조금씩은 익혀서 친구도 많고 여러 방면에 걸쳐 제법 해박한 상식도 갖추고 있었다. 그들의 성장은 결코 그것만은 아니었다. 뒤늦게야 기철의 존재를 발견했던 것이다.

명자언니가 손짓해 보이는 소파로 걸어가다가 양지는 흠칫 놀라며 멈춰 섰었다. 건장한 젊은 남자 하나가 외출복을 입은 채 네 활개를 펴고 소파에 기댄 채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탁자 위에 놓여있는 술병과 안주로 봐서 술을 마시다 과음해서 골아떨어진 듯 한 남자. 저런. 양지는 명자언니의 전력을 떠올리며 또 젊은 정부를 들인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으로 건장한 남자의 면면을 주시하며 뒷걸음질을 했다. 결국 돈이 목적이었으며 목적달성 후의 타락한 빤한 모습을 목격하자 이제까지 명자언니의 변신에 대해 가졌던 외경심이 일거에 경멸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멸시에 찬 양지의 눈길 속으로 넙적한 쟁반에다 먹을 것을 가득 얹어서 든 명자언니가 다가왔다.

“앉아라. 왜 그러고 섰니?”

양지의 눈치를 살피다 젊은 남자의 얼굴 위에서 둘의 시선이 엉키는 순간 어이없다는 듯 요란스럽게 명자언니의 웃음소리가 꺄르르 터져 나왔다.

“내가 젊은 애인이라도 불러들인 줄 알았던 모양이지? 잘 봐라 누군지. 기철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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