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4 (39)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4 (39)
  • 경남일보
  • 승인 2015.11.29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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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4막 (39)



아버지의 방문. 호남의 전화로 알게 된 아버지의 득남 소식. 사장을 남겨두고 옷가게를 빠져나왔던 일…. 아이를 낳고 제 정신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저 자신의 충격적인 변모를 비관하며 결국 생을 마감하고 만 정남의 애석한 죽음.

뒤미처 울컥 욕지기가 솟구쳤다. 입을 막으며 몸을 일으키자 골머리 속으로 찌르르 통증이 파고들었다. 입을 막았던 손으로 머리를 싸쥐며 몸을 구부리고 엎드렸다. 발목이 이상했다. 뾰족하고 딱딱한 것이 오른 쪽 엉덩이에 박혀 들었다. 양지는 피식 웃으며 오른 쪽 발에 아직도 꿰어있는 구두를 벗었다. 반쯤 닫힌 방문 이쪽으로 흙부스러기며 음식물 찌꺼기같은 것들이 흩어져 있는 것도 보였다. 그제야 아버지가 마시다 남긴 술을 시작으로 마시기 시작한 술은 미치도록 정남의 분신이 보고 싶은 감정을 부추겼고 술김에 밤길을 달려갔다가 차마 위탁가정의 대문을 흔들지는 못하고 되돌아 온 것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토했구나. 양지는 부리나케 부엌문을 살폈다. 다행히 부엌문은 꼼꼼히 닫혀 있었으나 배 아픈 강아지의 설사처럼 꾸덕꾸덕 말라붙은 토사물로 부엌바닥은 온통 더럽혀져 있었다. 양지는 제가 저지른 난장판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사람에게 감정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 이럴 때는 울어야할 것이다. 외로움밖에 확인되지 않는 자신의 처지를 서러워하며 뜨겁게 뜨겁게 누선을 자아 올려야 하리라. 그러노라면 매우 쏟아진 소낙비로 지저분한 개울바닥이 씻겨내려 가듯 어수선한 감정도 조금은 세척 될 것이다. 그러나 알면서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양지는 눈물이 적다. 이 정도의 자극으로 눈물이 흐를 만큼 양이 많지를 않다. 여간한 일에는 흐물거리지 않도록 딱딱하게 자신의 감정을 닦달해 놓은 결과였다.

양지는 천천히 몸을 움직여 청소를 했다. 뱃속이 꿀렁거리도록 원 없이 물을 들이켰다. 다시 방바닥에 드러눕자 냉기가 오싹 엄습해 되는대로 이불을 헤쳐 놓고 그 위로 몸을 굴렸다. 출근하면서 갈아 넣는 탄불인데 그냥 넘겼으니 방바닥은 벌써 차게 식어있었다. 따뜻함이 간절했지만 다시 일어나서 불을 피우러 몸을 움직이기 싫었다. 섬뜩한 냉기에 닿을 것이 싫어 두 손을 가슴에다 얹었다. 앙상한 젖가슴이 감촉 되었다. 거저 조금 살이 넉넉한 가슴 벼랑에 건포도 두 알이 달랑 매달려 있는 것 같은 빈약한 가슴이다. 언제 한 번 삿된 공상으로라도 가슴을 부풀려 본적이 있었던가. 헤식게 미소를 흘리며 고개를 돌리는데 벽에 걸린 꽈리 묶음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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