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4 (40)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4 (40)
  • 경남일보
  • 승인 2015.11.29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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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4막 (40)

당골네는 아직도 그 집 안 버리고 있데. 기철이는 골짜기 하나를 차지해서 농장 만들고 궁궐 같은 양옥 지어서 이사했는데 뭔 맛으로 그 오두막을 그대로 보전하고 있는지 모르겠더라. 재미 삼아 명자언니네 옛 집으로 산보 갔을 때 잘라 온 거라며 호남이가 보내 준 거였다.

친구 할만한 다른 집 아이들이 많았는데도 아버지의 눈을 피해 가며 명자언니네 자매들하고 유독 잘 어울려서 놀았다. 적지 않은 양쪽 집 아이들이 모여 앉아 청개구리처럼 불어댔던 꽈리 소리…. 양지는 저도 몰래 입가에다 미소를 흘렸다. 흐드러지게 우거진 찔레 덤불, 억새풀을 헤치고 개울둑을 거슬러 오르면 커다란 두엄더미나 부채버섯마냥 그 집, 명자언니네 집은 엎드려 있었다.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돌무더기가 반키나 쌓여 돌각담 구실을 했지만 철따라 모메꽃이 피거나 호박덩굴이 우거지면 한결 아늑한 생울타리가 되었다. 동네에서 너무 외따로 떨어져 있어서 겉모습만으로도 그 집은 항상 외롭고 가난해 보였다. 먼 산발치에서 어스름이 내리면 명자언니는 굿하러 간 부모대신 빈집에서 같이 잠자줄 친구를 찾아 울밑에서 기웃거리곤 했다.

너가부지 아실라 첫닭 울거등 쎄기 온나이. 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대밭 사이 개구멍으로 언니를 따라 빠져나가면 덩달아서 신이 났다. 쌀 한 종구래기 씩을 추렴해서 ‘맨잦이’로 바싹 지은 쌀밥은 정말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한 사람이 한 꼭지 씩 하게 되어있는 옛날이야기나 어려운 스무고개는 날마다 되풀이되는 거의 비슷한 내용일망정 성남언니와 명자언니의 표정과 행동에 따라 전혀 새로운 재미를 불러일으켜 모두를 웃기거나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게 했다.

그때라고 떠올리면 고향의 추억 속에는 명자언니네 집이 먼저 떠오르고 호박덩굴 밑에 똬리 틀고 있던 비단구렁이를 꼬챙이에 걸고 다니던 기철이, 밥그릇을 들고 마당이나 뒤꼍이나 담장 위, 심지어는 집 앞 버드나무에 걸터앉아서 냠냠거리고 먹던 그들의 자유스러움이 부럽던 것까지 낱낱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갸웃 고개를 젖혀 바라보는 부러운 눈길 저쪽에는 의문 부호로 항상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었다. 아버지는 항상 ‘계집 치맛자락에 말려서 죽어지내는 자식’이라며 별것 아닌 것을 꼬투리 잡아서도 명자언니 아버지를 욕했다. 아주 비천하고 흉한 것들의 변신을 혼자만 아는 듯이 침을 뱉고 노골적인 멸시를 퍼부었다. 그때 생각으로는 참 이상한 사람들이 명자언니네 아버지 어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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