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기 (논설고문)
“삼동(三冬)에 베옷 입고 암혈(巖穴)에 눈비 맞아/구름 낀 볕뉘도 쬔 적이 없건마는/서산에 해 지다 하니 눈물겨워 하노라.” 이 고시조는 남명(南冥) 조식(曺植)선생이 중종의 승하 소식을 듣고 연군의 정을 노래한 것이다. 초장은 청빈한 자기의 생활을 나타내는 것이고, 중장은 벼슬을 하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이고, 종장은 백성으로 임금의 승하 소식을 들으니 슬픔을 못 참겠다는 심정을 읊은 노래다.
▶삼동은 겨울을 말하는 것이고, 베옷은 벼슬 없는 사람을 뜻하고, 암혈은 바위구명·바위틈으로 세상을 등진 채 고결한 선비들이 숨어사는 곳을 말하는 것이고, 볕뉘는 얼마쯤의 작은 햇볕을 말하는 것이고, 눈물겨워 하노라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겠다는 뜻이다.
▶남명은 조정에서 여러 번 불렀으나 평생 벼슬을 하지 않았다. 학문과 후진양성에 몰두한 선비로 명종(1534~1567)의 부름을 받고 사정전에 나아가 임금께 치란(治亂)의 도리와 학문의 길을 글로써 아뢰고 산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남명은 혼탁해져가는 중앙정치를 보면서 벼슬을 포기하고 학문을 닦는 데 전념했다. 중앙 정계에서 떨어져서 중종의 죽음을 지켜본 남명의 마음은 아마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하나 임란 때 남명 제자 50여명이 의병장이었다. 우암 송시열 등은 남명을 ‘선비의 표상’이라 했고,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이만규는 ‘조선 500년 동안 가장 성공한 교육자’라고 칭송했다. 이수기 논설고문
▶삼동은 겨울을 말하는 것이고, 베옷은 벼슬 없는 사람을 뜻하고, 암혈은 바위구명·바위틈으로 세상을 등진 채 고결한 선비들이 숨어사는 곳을 말하는 것이고, 볕뉘는 얼마쯤의 작은 햇볕을 말하는 것이고, 눈물겨워 하노라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겠다는 뜻이다.
▶남명은 조정에서 여러 번 불렀으나 평생 벼슬을 하지 않았다. 학문과 후진양성에 몰두한 선비로 명종(1534~1567)의 부름을 받고 사정전에 나아가 임금께 치란(治亂)의 도리와 학문의 길을 글로써 아뢰고 산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남명은 혼탁해져가는 중앙정치를 보면서 벼슬을 포기하고 학문을 닦는 데 전념했다. 중앙 정계에서 떨어져서 중종의 죽음을 지켜본 남명의 마음은 아마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하나 임란 때 남명 제자 50여명이 의병장이었다. 우암 송시열 등은 남명을 ‘선비의 표상’이라 했고,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이만규는 ‘조선 500년 동안 가장 성공한 교육자’라고 칭송했다. 이수기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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