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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 여행] 남해 노도
경남일보  |  gnnews@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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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28  20: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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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맑은 물이 솟아나는 샘
아직도 맑은 물이 솟아나는 샘


◇절망의 섬, 노도에서 문학을 꽃피우다

당파 싸움이 치열했던 조선시대, 정권을 잡는 파당이 주요관직에 있던 반대당 관리들을 유배를 보냈는데 고위관직 벼슬아치 4명 가운데에 1명꼴로 유배를 갔다고 한다. 유배를 간 개인에겐 불행한 일이었지만, 유배 간 선비들이 위대한 작품과 저서를 남긴 것을 보면 백성들이나 후손들의 입장에서 ‘유배’는 은혜요, 축복일지도 모른다. 당파 싸움에 휘말려 수많은 관리들이 유배 생활을 했다. 그 중에서도 전라남도 강진에 유배되어 ‘목민심서’ 등 500여 권의 저서를 저술하는 등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가장 대표적으로 유배문학 작품을 남긴 인물이다. 호남 지역에 다산 선생이 있다면 영남지역에 유배온 선비로서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은 서포 김만중이라 할 수 있다. 서포 선생은 남해의 외로운 섬, 노도에서 3년 2개월 정도 유배 생활을 하면서 사씨남정기를 저술하는 등 당시 조정과 백성들에게 큰 영향을 준 선비다. 이번에 떠난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3>’은 유배라는 형벌을 치르면서도 나라와 세상이 바르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문학작품을 통해 구현하고자 애쓴 서포 선생의 삶을 되짚어 보고, 그 아픔을 위무하면서 우리들 스스로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고 역사적 진실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힐링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경남과기대에서 시창작 공부를 하는 수강생들과 함께 서포 선생의 유배지, 남해 상주에 있는 노도를 찾았다.


 
남해 유배문학관 모습
남해 유배문학관 모습


◇진실은 늘 등 뒤에 있다

진주에서 출발해서 삼천포·창선대교를 건너 남해군 상주면 앵강만 벽련마을에 도착한 탐방객들은 벽련 포구에서 도선을 타고 삿갓섬 노도에 닿았다. 몇 년 전만 해도 노도에 가려면 어선을 빌려 타고 가야했다. 지금은 하루에 세 번씩 정기 도선을 운행하고 있어서 탐방객들이 쉽게 노도를 방문할 수가 있다. 노도에 닿자 우리를 맞이해 준 것은 초겨울 매운 바람이었다. 벽련 마을에서 바라본 노도섬은 참으로 아늑하고 낭만적으로 보였는데, 막상 섬에 닿고 보니 찬바람과 쓸쓸함만이 섬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인생도 그럴지도 모른다. 막연히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은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보였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면 머릿속에 그려온 그 풍경은 사라지고 바닷바람과 추위로 삭막해진 현실만 눈에 띄는 경우가 많다.

선창가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는 언덕 위 ‘서포김만중선생유허비’가 있고, 늙은 팽나무 가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파른 비탈을 600m 정도 시멘트 포장길을 걸어가면 서포 선생이 3년 54일간 유배생활을 하다 쓸쓸히 생을 마감한 초막과 샘터, 허묘를 만날 수 있다. 벽련마을과 상주 앞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산길 양 옆으로 초겨울인데도 벌써 동백이 피어 있었다. 서포 선생의 마음이 밴 붉은 동백이 탐방객을 반겨주는 순간, 황량했던 겨울 분위기에서 화사한 얼굴로 바뀌었다. 오르막길을 걸어와서 그런지 아니면 동백꽃 그늘 아래라서 그런지 탐방객들의 얼굴이 모두 불그스레 꽃물로 물들어 있었다.



 
동백꽃이 핀 초막을 둘러보는 탐방객들
동백꽃이 핀 초막을 둘러보는 탐방객들


먼저 선생이 살았던 초막부터 찾았다. 초막으로 오르는 길은 모두 동백나무들이 서포의 뜻을 기리듯 향긋한 꽃을 피워 놓았고, 초막은 탱자나무 대신 홍가시나무가 울타리를 이루고 있었다. 물론 초막은 실제 서포 선생이 살았던 집이 아니라 유배지 터를 고증해서 새로 지은 집이다. 마루에는 누가 남겨 놓고 갔는지 낡은 밀짚모자 하나가 주인을 대신해서 집을 지키고 있었다. 그 밀짚모자 곁에 앉아 내려다 본 상주 앞바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토록 절경인 곳에서 외로움과 절망을 반추하면서 세상을 살았다고 생각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노도마을에서 몰아치던 바람도 여기에 오니 거짓말같이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했다. 이곳이 비록 유배지이지만 서포가 꿈꾸던 세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당파 싸움과 권모술수로 얼룩진 세상에서 벗어나 그림처럼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살고자 유배를 ‘선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속에서 벗어나 이런 곳에 살면서 진흙탕 세상을 바꾸려는 진정한 ‘혁명’을 꿈꾸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선생의 ‘사씨남정기’가 떠올랐다. 서포는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소설 ‘사씨남정기’는 사악한 장희빈을 몰아내고 후덕한 인현왕후를 다시 왕비로 바꿔놓는 ‘혁명적’ 역할을 했다. 혁명의 씨를 심고 꽃을 피운 곳이 이 초막이라고 생각하니 참으로 거룩하게 느껴졌다. 초라하지만 아늑한 집, 그리고 그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상주 앞바다는 그 어느 권력보다도 더 당당한 모습으로 세상을 지켜나가고 있었다. 사람은 죽어도 진실은 죽지 않고 영원히 그 역사의 등 뒤에서 세상이 썩지 않도록 방부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해 주려는 듯, 초막에서 15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샘에서는 아직도 깨끗한 물이 솟아나고 있었다. 자연이 사람의 품성을 만들고 그 자연 또한 주인을 닮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파른 돌계단을 걸어서 몸에 땀이 밸 무렵, 선생의 허묘에 닿았다. 쉰여섯 살 되던 봄날 세상을 떠나 이곳 무덤에서 몇 달 계셨다고 하는데 무덤 자리엔 지금까지 잔디 외엔 잡목이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서포는 떠났지만 선생의 올곧은 삶과 역사적 진실은 아직도 살아있는 듯해 찡한 여운을 담고 우리를 기다리는 배를 타기 위해 포구로 돌아왔다.


 
수백년이 지났는데도 잡목이 나지 않은 허묘 자리
수백년이 지났는데도 잡목이 나지 않은 허묘 자리

◇진정한 선비는 자리를 탐하지 않는다

숙종 15년, 장희빈 소생인 ‘균’의 원자책봉을 반대하던 서인들이 모두 축출되는 기사환국 때, 서포는 남해 노도에 유배되었다.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집필한 ‘사씨남정기’는 숙종이 인현 왕후를 폐위시키고 장희빈을 왕비로 맞아들인 것을 풍자한 것으로, 흐트러진 임금의 마음을 깨우치고자 쓴 한글소설이다.

선비는 임금에게 직언을 할 때, 자리를 염두에 두면 바른 말을 할 수가 없다. 하찮은 벼슬에 연연하다 보면 그 삶은 늘 비열해지고 남을 짓밟는 행위를 일삼는 경우가 많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서포는 당당하게 바른 말을 하다 쫓겨나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 정신과 삶의 진실은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다. 삶의 진실을 깨달으며 당당하게 사는 것 또한 자기의 자존감을 높이는 길이며 그 자존감이 곧 자기 긍정의 힐링으로 가는 길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노도 탐방은 진실을 깨닫고 자존감을 가꾸게 하는 뜻깊은 힐링여행이었다.



 
허묘로 가는 대리석 계단
허묘로 가는 대리석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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