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플러스 <134>순창 강천산
명산 플러스 <134>순창 강천산
  • 최창민
  • 승인 2015.12.30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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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위틈에 자라는 소나무.


연산군을 폐위하는 중종반정(1506년)으로 세력을 잡은 반정공신 훈구세력 박원종, 유순정, 성희안 등은 중종의 부인(단경왕후) 신씨를 반정에 참여하지 않은 신수근의 딸이라는 이유로 폐출하고 장경왕후 윤씨를 왕비에 책봉한다.

1515년 장경왕후 윤씨가 사망하자 순창군수 김정, 담양부사 박상, 무안현감 류옥은 단경왕후 신씨 복위를 주청하는 이른바 신비복위소(愼妃復位疏)를 올렸다.

이들은 소를 올리기에 앞서 순창 강천산에서 각자의 관인을 소나무에 걸고 죽음까지 각오한 결연한 의지로 왕비 복위를 추진했다.

이는 반정공신인 훈구세력들이 왕을 옥죄어 신씨를 폐출한 부당성을 세상에 알리고, 반정의 대의까지 퇴색케한 전횡을 통박한 일로, 불의 앞에는 목숨까지 내놓는다는 절의(節義)를 지킨 사건이었다. 그러나 훈구세력들은 이들의 뜻을 받아들이기는커녕 파직과 함께 귀양을 보내고 말았다.

200년 후 도암 이재 등 호남과 순창지역의 유림들은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비와 비각을 세우고 세 사람의 직인이라는 뜻의 ‘삼인대’를 세웠다.

이 삼인대는 순창 강천산(583m)입구 강천사 앞 산기슭에 있다. 세 사람의 뜻을 받들자는 의미로 근년에 세운 절의 탑도 큰길가에 있다.

 
▲ 강천산 일대 풍경 메인


▲등산로는 강천산공원매표소→병풍폭포→교량건너 갈림길(등산로입간판)→오른쪽 산방향→깃대봉 전(前)삼거리→강천제 2호수갈림길→깃대봉→형제봉삼거리→구장군폭포→현수교(구름다리)→강천사 원점회귀.

공원매표소에서 교량을 건넌 뒤 오른쪽 산으로 붙어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 정상에 오르고, 강천호, 현수교, 강천사, 삼인대로 내려오는 코스다.

▲오전 10시 20분, 공원관리 매표소가 산문을 대신한다. 워낙 많은 관광객이 찾기 때문에 상주하는 직원이 등산로를 안내하고 있다.

첫번째 만나는 비경은 병풍폭포. 높이 40m에 달하는 기암절벽의 폭포가 웅장하기 그지없다. 반면 폭포수가 워낙 높은 곳에서 떨어지기 때문에 물이 비산해 마치 부드러운 실비단을 걸친 것처럼 보인다. 이 물을 맞으면 과거의 잘못을 씻어준다는 말이 있으나 출입이 제한돼 보는 것만 가능하다.

병풍폭포 앞을 지나 교량을 건너면 곧바로 등산안내 입간판이 있는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곧장 큰길을 따르면 구름다리 구장군폭포 등으로 갈수가 있지만 취재팀은 이 지점에서 오른쪽 산으로 방향을 잡았다.

겨울은 산의 모든 것을 삭막한 회갈색으로 변모시켰다. 나무도 바위도 회갈색, 그 틈을 헤집고 다니는 동물들도 보호색으로 갈아입었다. 그야말로 푸르렀던 싱그러움은 사라지고 잔인하리만큼 야윈 넝쿨과 말라버린 나목만아 처연하다.

생명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바위틈에 뿌리를 박고 사는 상록수 소나무는 그나마 이 겨울을 지탱해주는 풍경이다.

출발 1시간 만에 깃대봉 삼거리. 정확히 말하면 깃대봉 못미친 지점이며, 갈림길이라 해도 천자봉 가는 길은 폐쇄돼 갈 수 없다.

오전 11시 37분, 강천산 첫 봉우리 깃대봉에 닿는다. 고도가 낮아 큰 나무들은 별로 없고 비썩 마른 잡목만이 겨울의 을씨년스러움을 더한다. 왕자봉으로 가는 길은 산죽과 굴밤나무가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길, 산이 험하지 않아 등산객 뿐만 아니라 휴양객이 많이 찾는 힐링장소다.

강천산 주봉 왕자봉은 주등산로에서 약간 벗어난 지점에 있다. 정상석과 인근 나뭇가지에는 형형색색 산행리본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 들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강천산은 최근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관광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1981년 1월 우리나라 최초로 군립공원으로 지정 개발돼 군의 재정자립도 상승에 기여하고 있다.

한때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하는 것 같다’고 하여 용천산으로 불렸으나, 신라 때 도선국사가 계곡 깊은 곳에 강천사라는 절을 만드는 바람에 산 이름도 강천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정상을 벗어나면 형제봉삼거리다. 직진하면 3.2km지점에 송낙바위, 왼쪽으로 내려서면 전망대를 거쳐 한국농어촌공사에서 건설한 강천 제2호수가 나온다.

 
▲ 구장군폭포


오후 2시 50분, 길 건너 숲에 하트모양을 한 사랑바위는 삼한시대 한 부족의 공주가 다른 부족왕자를 사모해 사랑이 이뤄지기를 빌며 매일 찾아와 돌을 던졌다는 전설이 서린 곳이다. 길가에서 돌을 던져 바위에서 떨어지지 않고 머무르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갑자기 전방 시야가 뚫리는 광활한 광장이 펼쳐지고 절벽 높은 하늘에서 두 줄기 폭포수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떨어진다. 구장군폭포다. 2005년 물길을 끌어 조성한 인공 조성한 폭포이지만 천하절경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마한시대 혈맹을 맺은 아홉명의 장수가 전장에서 패한 후 이곳에 이르러 자결하려다가, 차라리 자결할 바에는 전장에서 적과 싸우다 죽자고 마음을 고쳐먹고, 비장한 각오로 의기투합해 승리를 거뒀다는 전설이 있다.

높이 120m 기암괴석 사이로 굽이쳐 흘러내리는 두 줄기의 폭포는 마치 신의 조화로 만들어진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다.

오후 3시 20분, 길이 50m짜리 구름다리 현수교는 계곡을 가로질러 높은 곳에 설치해 놓았다. 이 현수교는 사람이 지나가면 무게 때문에 자동적으로 흔들리는데 바람까지 불어오면 스릴이 극에 달한다. 담이 큰 사람이라면 중간에 서서 양쪽으로 펼쳐지는 강천산의 진정한 풍광을 만끽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몇 년 전 가을 이 산을 찾았을 때 현수교 부근에서 공전(空前)의 히트작 TV예능 프로그램 ‘1박2일’이 녹화되고 있었는데 우연히 출연자인 엄태웅과 함께 사진이 찍힌 적이 있다.

옥을 굴리는 아름다운 계곡이라거나 혹은 작은 금강산이라는 별칭이 있는 강천산에는 방송인뿐 만 아니라 유명 인사들이 많이 찾는다.

 
▲ 삼인대


현수교 구름다리를 건너 등산로를 따라 내려오면 왼쪽에 887년(신라 진성여왕 1년)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강천사다. 이 절은 임진왜란 때 강천사와 12개의 부속암자 전소된 뒤 중건했으나 한국전쟁 때도 또 소실됐다. 지금의 강천사는 1959년부터 1997년까지 수차례 중창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오른쪽 산기슭에 관인을 소나무에 걸고 신비복위소를 올릴 것을 다짐했던 삼인대 누각이 보인다. 한참동안 구름이 태양을 가렸었는데 이날따라 유난히 강렬한 햇살이 삼인대에만 밝게 비치는 이유를 알수 없다.

작은 팔각지붕 비각 안에는 높이 157cm, 너비 80cm의 삼인대석비가 세워져 있고 절의의 내력을 담은 비석은 그 옆에 서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300년 수령의 모과나무도 이 부근에서 관찰할 수 있다.

순창사람들은 매년 8월 이곳에서 선열들의 충절과 효의 정신을 기리는 삼인문화축제를 연다. 축제에는 삼인문화 학술세미나, 재현행사, 제례, 백일장 대회, 국악공연이 펼쳐진다. 삼인대를 뒤로하고 십장생교를 지나 하늘로 치솟은 메타세콰이어 나무 옆을 돌아서면 서산에 해가 꼬리를 감춘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낙엽이 뒹구는 고즈넉한 강천산의 겨울 등산로.
병풍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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