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망미루 그리고 서희집터
[교단에서] 망미루 그리고 서희집터
  • 경남일보
  • 승인 2016.01.1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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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영 (명신고등학교장)
공북문으로 입장해 충무공 김시민 장군 동상을 지나 언덕으로 오르면 벽이 트여 사방을 바라볼 수 있게 높이 지은 누(樓)의 지붕은 치솟고 처마 아래 현판은 크게 다가오며 마루는 높아져 고개 들고 지나가겠다. 두 근무병이 미투리를 신고 삼지창을 쉬어 자세로 두 기둥 앞에 버티고 섰다. 하마비에 수령 이하는 말에서 내리라고 하니 걸음이 주춤해진다. 조선말 지방 행정관청인 경상남도관찰사의 선화당 관문으로 지었다니 ‘門’자로 마무리되는 ‘嶺南布政司門’이 제대로 된 이름이다. 마루 밑을 지나 아쉬워 돌아보았더니 안쪽 깊숙한 지점에 망미루(望美樓)라는 현판이 보인다. 아름답다는 美자에 시선이 꽂히는데 따뜻함을 받는 듯하다.

이렇게 좋은 이름의 현판을 왜 어둠 속에 두었을까. 성안에서 가장 높아 사방을 두루 볼 수 있고 동향이라 해 뜨는 광경을 볼 수 있어 이곳에 오르면 경치가 좋고 먼저 해를 볼 수 있어 저절로 마음이 밝아지겠는데…. 제안하면, 영남포정사와 망미루 편액을 바꾸어 걸자. 통제사의 집무실 자리로 운주헌터가 안쪽에 있어 영남포정사를 뒤쪽 처마 밑에 걸면 경계가 확실해지는 효과가 있다. 망미루는 앞쪽으로 내걸면 한결 운치가 있겠다.

망미루 옆에 ‘河崙先生胎地’라는 표지석이 있는데 남강이 내려다보이고 촉석루를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이다. 작가 박경리 선생은 소설 ‘토지’에서 진주를 무대로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만주에서 진주로 옮겨와 남편과 성(姓)을 바꾸고 김서희로 하여 터를 잡는다. 작가는 여러 차례 집의 위치를 설명했는데 하륜선생태지의 아래 아름드리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는 근처로 설정한 듯하다. 서희집터를 선정해 표지석을 세워 문학도시로 널리 알리자.

평사리의 집보다는 규모가 작은 듯했으나 짜임새는 월등하다. 엄하고 풍요한 최참판댁 여인들의 입김이 이곳에 서려 있다. 남강 언덕의 대숲이 연둣빛 안개같이 뿌연 하늘에 번져나고 있다. “음, 여기 서서 얘기할 수 없고 서장대로 올라갑시다.” 영학은 초조한 마음을 털끝만큼도 내보이지 않고 나형사를 따라 어슬렁거리듯 서장대로 올라간다. 바람 쐬러 나온 사람들이 없지 않았으나 그런대로 서장대는 한적했다.

변신은 관심이라 안내판 디자인에서 문안의 작성 등 탐방객에게 감동을 주는 꼼꼼한 꾸밈은 진주성의 격조를 높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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