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지역 종가의 술 빚는 방법
경남지역 종가의 술 빚는 방법
  • 경남일보
  • 승인 2016.01.11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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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경상대학교 도서관 문천각 사서)
이정희
제사와 손님접대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술이다. 민간에서는 제사나 명절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술을 빚었다. 집집마다 특유의 비법으로 술을 빚었기 때문에 다양한 종류와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술 빚는 법이 적힌 고문헌은 좀처럼 찾기가 어렵다. 종부가 며느리에게 입으로만 전하고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남지역에는 진주 단목 진양하씨 종가에 전하는 습정재(習靜齋) 하응운(河應運·1676~1736)의 처 인동장씨가 기록한 ‘호산춘주’ 빚는 법이 전한다. 그녀는 경북 구미에 사는 선비 장우극(張宇極)의 딸로, 친정에서 전수받은 비법으로 술을 빚어 봉제사와 접빈객에 사용했다. 술 빚는 법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호산춘주라. 백미 닷 되를 흰 가루로 만들어 물 한 말에 그 가루를 섞어 끓여 채운 후, 여기에 누룩 가루 다섯 홉과 밀가루 다섯 홉을 한데 섞어 칠일을 지낸다. 백미 한 말 찹쌀 한 말을 가루로 내어 물 서 말을 매우 끓여 채운 뒤에 가루를 골라 먼저 담근 밑술에 섞어 열흘이 되면 누룩 가루 한 되를 섞어 넣는다. 칠일이 되면 백미 서 말을 흰 가루로 내어 술밥을 찐다. 이 술밥에 물 서 말을 끓여 채워 둔 다음 밑술에 섞어 칠일을 지내고 냉수 서 말을 부어 칠일을 지낸 뒤에 먹으면 냄새가 코를 찌르느니라.”

호산은 전북 익산의 별칭이고, ‘호산춘주’는 익산에서 찹쌀과 멥쌀로 세 번 빚은 술을 가리킨다. 이 방법은 경북으로 전해지고, 다시 인동장씨에 의해 진주로 전래된 것이다. 재료의 배합 분량, 발효기간 등을 상세히 기록해 오늘날 재현도 가능한 한글 기록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요리책인 장계향(1598~1680)의 ‘음식디미방’과 함께 술 빚는 법을 기록한 경남의 희귀한 문헌이다.

옛 문헌에서 전통주 빚는 법에 관한 기록들을 발굴해 잘 정리하고 재현해 나간다면 우리나라 전통주가 일본의 사케, 프랑스의 와인, 독일의 맥주를 능가하는 역사성이 있는 술로 널리 인정받을 것이다. 자신만이 아는 사소한 비법이라도 입으로만 전하지 말고 기록으로 남겨두면 후세에 요긴하게 활용될 수 있다.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일상 생활화하고, 남겨진 기록은 소중히 보존하고 잘 활용해야 할 것이다. 
 
이정희 (경상대학교 도서관 문천각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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