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인의 기록 보존 방법
경남인의 기록 보존 방법
  • 경남일보
  • 승인 2016.01.18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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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경상대학교 도서관 문천각 사서)
이정희
기록은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겨진 기록을 잘 보존·관리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조선시대에는 전국 오지에 사고(史庫)를 지어 역사기록을 분산 비치하는 방법을 택했다. ‘조선왕조실록’의 원문을 오늘날 볼 수 있는 것은 이런 지혜 덕분이다. 민간에서는 어떤 방법으로 보존했을까. 진주 진성면 월정마을 사람들의 지혜가 눈길을 끈다. 주민들은 각종 전란으로부터 마을과 문중의 역사를 지켜내기 위해 마을 앞에 커다란 자연석 바위를 설치하고, 바위 아래에 네모난 구멍을 판 뒤 그 속에 고문헌을 숨겼다. 이 바위를 ‘장암(藏巖)’이라고 불렀다. 바위 속에는 임진왜란 직후부터 실시한 마을 계회(契會)와 관련된 역사기록인 ‘동안(洞案)’과 이 마을에 사는 10개 문중의 족보 등 20여 점을 보관했다.

그리고 30년에 한번씩 음력 3월 3일 각 문중 대표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이 자료를 꺼내어 보존 상태를 살폈다. 낡은 동안은 새로운 책에 옮겨 적고, 또 새로 태어난 후손들은 족보에 추가로 적어 바위 속에 다시 넣어 보관하기를 근래까지 반복해 왔다. 바위 속에 마을의 역사를 보관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바위 속에 고문헌과 숯을 함께 넣어 부패를 막고자 노력했지만, 고문헌은 이미 심각하게 썩어가고 있었다. 이에 마을 주민들은 이 방법으로 마을의 역사를 길이 보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음을 자각하고, 결국 2012년 8월 경상대학교 도서관에 모든 자료를 영구 위탁했다.

고문헌을 소장한 문중을 방문해 보면 장롱이나 궤짝 속에 꼭꼭 숨겨두고 잘 보여주질 않는다. 종손이 연구기관에 기증하고자 하면 방손들은 종손을 꾸짖으며 이를 만류한다. 그러다가 화재로 불타고 도난 맞아 탄식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선현들이 기록을 남기는 목적은 후세에 널리 읽혀 연구되기 위해서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늘날 자기 가문의 조상들이 남긴 고문헌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후손은 매우 드물다. 고문헌이 읽히고 연구되지 않게 하는 것은 기록을 남긴 선현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다. 시대와 상황이 달라지면 고문헌을 보존·관리하는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이제는 고문헌을 대학에 보내어 전문적으로 관리하게 하고, 연구에 활용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문중의 역사도 빛나게 된다. 경상대학교가 고문헌도서관을 짓고 있는 이유다. 
 
이정희 (경상대학교 도서관 문천각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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