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김군에게
[교단에서] 김군에게
  • 경남일보
  • 승인 2016.01.25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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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준 (진주동명고등학교 교감)
김군! 새해 밝음에 설레던 시간이 한 달이 지났지만, 구랍(舊臘) 28일 늦은 시간에의 만남을 나는 아직도 선연히 기억하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7년, 군복무 2년과 대학을 졸업하고도 1년을 보낸, 그리고 씻은 무 같이 훤한 얼굴과 꽃 같은 나이 26세 미취업 청년과의 만남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네.

김군, 오늘 다시 그날을 거론하는 것은 그날 대면해선 차마 말하지 못한 얘기가 있어서라네. 결론부터 말하면 요즘 언급되는 흙수저는 애초에 존재할 수 없는 물건이고 금수저에 대비되는 저질 수저가 있겠지만 그런 수저의 차이는 인류 역사 이래 항상 있었다네. 신라시대에도 성골과 진골, 6두품이 있었고 고려나 조선시대에도 반상의 계급이 항존했음을 잘 알지 않는가. 김군, 어느 때에도 봄이면 꽃이 피고 졌으며 여름엔 녹음과 태풍이 있었으며, 가을엔 단풍과 낙엽, 겨울이면 따뜻한 구들과 폭설을 보지 못한 계절이 있었던가. 이런 역사와 자연질서처럼, 취직하기 편했다는 아버지 세대들도 김군만한 나이에 담배 꼬나물고 자필 이력서를 밤새워 썼었고, 시대에 대한 울분을 선술집과 자취방에서 토로했었다네.

김군, 김군의 성실했던 고등학교 3년을 내 기억한다네. 대학에서도 그러했을 터. 그래서 남 못지않은 학점과 스펙도 쌓았을 것이기에 너무 염려 말게나. 다윗왕 반지의 명문(銘文) ‘이 또한 지나가리라!(Soon it shall also come to pass.)’를 아는가. 고통과 즐거움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고 늘 자신을 다스렸다는 그 글귀 말이네. 또 맹자께서도 ‘하늘이 장차 큰일을 어떤 사람에게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마음을 괴롭히고, 근골을 힘들게 하고, 육체를 굶주리게 하면서 생활을 곤궁하게 해서 행하는 일이 뜻과 같지 않게 한다’고 했었네. 이는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그 성질을 참게 해 일찍이 할 수 없었던 일을 더욱 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네. 그래서 영국의 시인 E. 브라우닝의 ‘그래도 가장 좋은 것은 앞날에 남았으리, 오직 그것을 위해 나아가리!’란 시구를 기억하면서 긍정과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할 것이네.

김군, 오늘 나의 잔소리, 한 해의 벽두부터 충언을 빙자한 헛소리가 심한 걸 보면 난 영락없는 선생인가 보네. 이해하시고 자중하고 자애하여 올 연말엔 기분 좋게 한 잔 하세나. 굿럭!
 
문형준 (진주동명고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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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심장 2016-02-10 18:23:22
마음을 울리는 글, 감사합니다.

또한
젊은이들이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토대를 쌓는 일에
기성세대들이
더 노력을 기울여야 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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