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중기자 (취재1팀장)
김장하 선생은 진주지역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인사다. 하지만 유명세와는 달리 김장하 선생의 얼굴을, 또는 구체적으로 무슨일을 해왔는지를 아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단순히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해 기증한 분’으로만 알고 있는 이들이 대다수다.
그만큼 유명세를 원하지 않는 선생의 성품이 이유로 작용했다. 극도로 언론 노출을 꺼려왔고, 주변에서 선생의 기부와 관련된 이야기 조차 언급하는 것을 자제해 왔다.
김장하 선생은 1984년에 진주명신고를 출범시킨후 7년뒤인 1991년 당시 싯가로 100억원이 훨씬 넘는 학교를 국가에 선뜻 기증한 김 선생. 학교를 만들어 인재를 키워내고 역사를 쓰는 ‘진주의 어른’이었다. 이번 명신고등학교 설립 30주년 행사에 에 맞춰, 실례를 무릅쓰고 김장하 선생의 인터뷰를 요구했지만 역시 단칼에 거절 당했다.
어쩔 수 없이 김 선생에 대한 자료를 종합, 재구성 해 기사에 담게 됐다.
한번은 인터뷰를 통해 그의 진솔한 생각을 지면에 담고 싶다는 바람도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기사가 게재되고 김장하 선생의 존경심을 표하는 독자들로 부터 ‘잘 읽었다’는 인사를 받기도 해지만 개인적으로 그분의 내면을 자세하게 소개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다.
그만큼 유명세를 원하지 않는 선생의 성품이 이유로 작용했다. 극도로 언론 노출을 꺼려왔고, 주변에서 선생의 기부와 관련된 이야기 조차 언급하는 것을 자제해 왔다.
김장하 선생은 1984년에 진주명신고를 출범시킨후 7년뒤인 1991년 당시 싯가로 100억원이 훨씬 넘는 학교를 국가에 선뜻 기증한 김 선생. 학교를 만들어 인재를 키워내고 역사를 쓰는 ‘진주의 어른’이었다. 이번 명신고등학교 설립 30주년 행사에 에 맞춰, 실례를 무릅쓰고 김장하 선생의 인터뷰를 요구했지만 역시 단칼에 거절 당했다.
어쩔 수 없이 김 선생에 대한 자료를 종합, 재구성 해 기사에 담게 됐다.
한번은 인터뷰를 통해 그의 진솔한 생각을 지면에 담고 싶다는 바람도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기사가 게재되고 김장하 선생의 존경심을 표하는 독자들로 부터 ‘잘 읽었다’는 인사를 받기도 해지만 개인적으로 그분의 내면을 자세하게 소개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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