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칼럼] 독수리, 검고 환하다
[객원칼럼] 독수리, 검고 환하다
  • 경남일보
  • 승인 2016.01.28 13:2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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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숙자 (시인)
겨울 섬진강에 갔다. 도도한 검은 휘장을 두른 독수리떼들이 매서운 강바람을 가르며 빙빙 선회한다. 강줄기는 얼어붙고 강심으로 흐르는 것들만이 말갛게 반짝이며 흐르고 있다. 쨍한 겨울바람이 온기만을 찾던 조금 늘어진 정신에게 번쩍하고 채찍을 날린다. 날카로운 발톱을 숨긴 채 저 시린 겨울 하늘을 비행하는 자유로운 독수리의 영혼에 사로잡힌다. 독수리는 군주가 된 위엄을 보이며 섬진강 풍경을 온통 다 거느리고 있다.

나는 검은색에 한없이 매혹당한다. 뜨거움인지 차가움인지 자유로운 영혼이 부러워 자꾸만 셔터를 누른다. 몽골 홉스골이나 알타이 초원을 누비던 독수리가 겨울이면 한반도로 왔다가 다시 봄이 오면 몽골 바람의 나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독수리의 수명은 60여년 정도. 30년쯤 지나면 날을 수 없을 만큼 몸이 쇠하여 어깻죽지의 힘이 빠지고, 발톱과 부리는 휘고 구부려져 더 이상 제왕의 면모는 사라지고 만다.이때부터 독수리 생의 위기 전환점이 시작되는데 독수리는 본능적으로 이대로 죽을 것인지, 고통을 저당 잡히고 새롭게 태어날 것인지 선택한다고 한다. 약한 독수리는 그대로 수명을 다해 자연으로 돌아가고, 강한 독수리는 높은 산 절벽 위에 올라가 환골탈태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다. 바위에 헌 부리를 쳐서 부러뜨려 다시 새 부리가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새로운 부리가 나면 헌 발톱을 하나하나 뽑아내고 새 발톱이 자랄 때까지 또 기다림의 세월을 보낸다고 한다.

그리고는 새로 돋아난 부리로 낡은 날개의 깃털을 뽑아내고 새 깃털이 자라 날갯짓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인고의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그 통과의례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이때 다시 아기새로 태어나는 고통을 맛본다고 한다. 저 장엄한 독수리의 위엄이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님에 가슴이 뜨거워진다.지금 누군가 고통 한가운데 있다면 진정 독수리의 삶의 과정 중에 있다는 것으로 위안 받았으면 좋겠다. 결국 상처 없는 독수리는 죽은 독수리밖에 없고 빛나는 상처는 살아서의 영광이라는 것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이루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것으로 우리 마음은 늘 바쁘고 조급하다. 쉽게 주어지는 것은 너무 빨리 사라지고 허물어지고 떠나가 버린다. 끝내는 상처가 나를 키우고 시련이 더욱 단단하게 담금질하는 법이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좌절이 또 다른 희망을 불러올 것이다.

독수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 결국 세상은 얼어붙은 강줄기처럼 얼었다 녹았다 하며 돌아갈 것이다. 시린 겨울 섬진강가에 서서 독수리의 위엄을 우러러며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몸을 한껏 낮춘다. 저 자유로운 영혼의 비상을 위하여.

나는 지금 독수리를 보는 이 아니라 독수리가 건너온 시간의 전설을 서성이며 차가운 겨울을 견디고 있다. 검은 영혼이 전하는 바람의 이야기로 인해 나는 점점 환해진다. 날이 저물면 새들도 하루가 끝나가는 걸 아는 모양이다. 끝내 독수리는 강의 심지 같다. 환하게 밝히고 싶다.
 
황숙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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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ㄴㄴ 2016-02-11 02:44:32
독수리 부리 부러지면 다시 자라서 오래산다.. 이 얘기 거짓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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