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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의 기행 (78)내원사 국보탐방새 해를 맞는 마음으로 비로자나불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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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2.03  22: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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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천재와 천왕봉


우리민족 최대 명절 설. 설날을 원단·원신·세초·연두·연시라고도 하는데 이는 한 해가 시작되는 새해 첫 달의 첫 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신일이라고도 하여 근신하고 조심하는 날이라는 뜻도 있다. 그래서 정초가 되면 나름대로 기도처를 찾아 치성도 드리고 한 해의 소원을 빌기도 한다. 올해는 보물 제1021호에서 국보 제233-1호로 승격 지정된 석조비로자나불을 친견하기로 작정하고 지리산 내원사를 찾아나섰다.

35번 고속도로 단성 요금소를 나와 삼우당 문익점선생의 면화시배지를 에돌아서 덕산을 향해 지리산대로를 따라 작은 고갯길을 넘어서면 고래 등 같은 기와지붕들이 추녀를 맞댄 남사예담촌이 나온다. 옛 내음 물씬 나는 돌담장 골목길로 들어서니 허리 굽은 홰나무가 정중하게 마주서서 길손을 영접한다.

옛 세월이 그리워서 수 백리도 마다않고 찾는 이가 많은데 지나가는 길손이 어찌 그냥 가겠는가. 정씨 고택, 하씨 고택 옛사람이 살던 흔적 이곳저곳 둘러보니 대청마루 너른 뜨락 고매화는 정이 겹고 누마루에 올라서 성현들의 체취라도 어름푸시 맡으면서 원정공의 옛집이라 ‘원정구려’ 현판 쓰고 ‘석파노인’ 낙관 찍은 대원군의 글씨를 또 한 번 보고나니 솟을대문 앞에서 뒷짐 쥐고 근엄하게 ‘이리 오나라’ 하고 옛 사람의 흉내까지 내보고 싶어진다. 시간이 빗겨간 돌담장 옛 길에 서니 사랑채서 글을 읽는 낭랑한 소리하며 안채에서 들려오는 애기 울음소리와 정겨운 베틀소리 장단 맞춘 다듬이소리에 온고지정이 새록새록 새로워서 무쇠솥뚜껑 여는 소리에 밥 냄새가 구수하다.

홍매화를 심어 놓고 영매시를 지으셨던 원정공 하즙선생의 원정매를 안 보고서야 어찌 ‘입덕문’으로 들겠는가. 선생의 증손 하연선생께서 심으셨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감나무는 세월의 흔적인지 밑둥치는 삭아서 휑하니 비어 있고 620여년 질곡의 역사가 응어리져서인지 울퉁불퉁한 옹이가 뚝배기를 엎은 듯이 겹겹으로 붙어서 기나긴 옛 이야기를 오늘도 이어준다.

칠정마을 창촌삼거리를 지나서부터 지리산대로인 20번 도로는 덕천강을 거슬러 오르며 굽이져 이어지는데 덕산 초입을 알리는 ‘입덕문’ 이라 새긴 커다란 바윗돌 앞에 작은 주차장을 마련하고 ‘덕문정’의 안내판이 차를 세운다. 봄의 정자는 환담을 나누는 곳이고 여름의 정자는 휴식을 위함이요, 가을의 정자는 서책을 가까이 하는 곳이요, 겨울의 정자는 바라다보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곳이라는 ‘덕문정’.

입덕문 빗돌아래 덕천강을 굽어보며 길섶 아래 벼랑 끝에 없는 듯이 돌아앉아 뭇사람이 오고가든 개념도 않으면서 문인묵객 옛 사람이 언제 올까 기다린다.

팔작지붕 계자난간 강물위에 비춰놓고 중천 높은 둥근달에 그리운 님 새겨 넣고 별들 총총 별빛에다 정담 섞어 시를 짓고 준봉준령 병풍삼아 등받이로 둘러놓고 물소리가 고아서 가야금도 할 일 없고 바람소리 소소하여 거문고도 할 일 없다. 지필묵은 밀쳐두고 창공에다 시를 쓰고 기암괴석 암벽 끝에 난을 치면 수묵화라 신선이 따로 없어 발길을 돌리는데 한참이 걸렸다.

 
   
▲ 대포리 3층석탑


산모롱이를 돌아서 4차선도로는 중산리로 보내고 덕산 들머리 길로 들어서자 지리산 천왕봉의 하얀 눈이 남향의 햇볕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데 남명조식선생의 기념관과 산천재가 길을 사이에 두고 널따랗게 자리를 잡았다.

남명기념관 앞에 차를 세우고 천왕봉이 손끝에 닿을 듯이 환하게 보이는 산천재로 들어섰다. 산천재 앞마당에 남명선생께서 심으신 남명매는 올해도 설중매로 피려고 눈 덮인 지리산을 꿋꿋하게 바라보며 볼통볼통하게 꽃망울을 옹골차게 맺었다. 남명기념관으로 발길을 옮겨 세한삼우가 상청한 뜨락에 선 선생의 석상 앞에 고개를 숙였다.

눈 덮인 천왕봉은 햇볕에 반사되어 더욱 찬란한데 덕산장터의 날머리에서 우회전을 하여 대포리로 내려섰다. 대포리삼층석탑을 이번에는 기어이 찾기로 작정하고 마을 회관부터 들렀다. “내원사는 이쪽이고 저쪽으로 쭈-욱 가면 있는기라” 하시는데 “하모 하모” 하고 거드시는 다른 할머니도 도움이 되지는 않겠다 싶어서 꾸벅꾸벅 절만 하고 돌아섰다. 내원사계곡의 절경을 바라보며 금포정교를 건너 좁다란 산길을 돌아 나무다리 앞에서 차를 세워 놓고 가파른 남수골의 산길을 올랐다. 골이 깊어선지 새소리도 나지 않고 물소리만 청량한데 층이 진 언덕배기 한쪽에 선 3층 석탑은 두리번거리는 길손을 한참이나 지켜보고 있다. 철분이 많은 석질이라 녹물 같지만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탑신은 마모와 훼손이 더러 있어도 섬세하고 멋스럽고 크기도 웅장하여 장엄한 자태 앞에 두 손을 모았다. 보물 제1114호인 ‘대포리3층석탑’ 은 찾는 이도 없어 향로도 촛대도 다기그릇 한 점 없이 심산외진 곳에 처량히도 홀로 섰다. 절집도 아닌데 무슨 사연이 있어서 일까. 출타를 하였는지 버려두고 떠났는지 빈집 한 채가 인적도 없어 산속의 깊은 골은 더더욱 괴괴하다. 뉘라서 또 언제 찾을지 몰라 돌아서기가 못내 서운하여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금포정다리를 다시 건너 계곡의 절승에 흠뻑 젖으며 내원사를 찾아 새로이 마련한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장단골과 내원골이 맞닿아지는 계곡의 언저리를 석축으로 높이 쌓아서 산은 옛 산이로되 계곡은 옛 것이 아니고 천년세월의 옛 정취는 간 곳 없이 사라졌다.

‘명옹대’ 반석위로 하얗게 새로 놓은 화강암의 반야교를 건너섰다. 대웅전과 비로전이 그나마 낯이 익어 반가운데 3층 석탑은 더 더욱 반기신다. 어쩌면 대포리의 3층 석탑과 이리도 닮았을까! 크기도 모양새도 빛깔까지 닮았으니 동·서의 쌍 탑은 아니었을까. 보물 제1113호인 석탑 앞에 예를 갖추고 아담한 비로전으로 들어서니 비로자나석좌불이 미소를 머금은 채 가만히 반기신다. 화엄경의 주존불로 진리의 빛이 온 누리를 밝히신다하여 대광명전이나 대적광전의 본존불로 모신다 했는데 이곳에는 따로 비로전이 마련돼 있다.

보물 제1021호였었는데 지난 1월 7일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란 정식명칭으로 국보 제233-1호로 승격되었다. 국보 제233호인 사리호에 새겨진 15행 136자의 이두명문이 해독되어 사리호가 이곳 좌대의 중대석에서 나온 것으로 확인돼 국보로 승격된 것이다. 오래전부터 마을 사람들은 ‘뜯어온 불상’으로 부르고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비로자나불의 애환서린 사연일랑 후일로 미루고 헌향의 예를 갖추고 ‘온 누리의 광명’을 두 손 모아 빌어본다.

 
국보 제233-1호 비로자나불
국보 제233-1호 비로자나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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