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귀뚜라미
[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귀뚜라미
  • 경남일보
  • 승인 2016.02.0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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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귀뚜라미
-학동 돌담길


여윈 수숫잎조차 물 긷는 일을 멈춘,

고요란 고요 모두 어깨 걸고 일어서는,

시위가 극성일수록 달빛 더욱 짙푸른,

가시 돋친 다리가

마침내 귀가 되는,

-박종현(시인)



시인의 감각은 참으로 남다르다. 작은 미물의 소리를 통해 계절의 환승을 노래할 줄 알고, 그 울음의 높낮이로 달빛의 명암까지 구별할 줄 아는 것이다. 꽃은 시들고 풀은 마르고 이렇듯 가을밤의 완성은 악착같이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오래된 토석 담장 곁에서 안간힘 다해 한 생을 견디는, 적막에 머물다보면 어느새 자신마저 한 마리 귀뚜라미(가시 돋친 다리가/ 마침내 귀가 되는)가 되어 고독을 교감하기에 이른다. 소리를 듣고 방향을 감지하는 귀뚜라미의 고막이 다른 곤충과는 달리 앞다리의 종아리마디에 있음을 시인은 이미 알았던 것이다.

문명의 소음에 길들여져 있는 감각들이 잠시라도 동화되는 듯한 자연 친화적인 정서가 이 겨울, 회색 콘크리트 벽까지 전해지는 디카시다./ 천융희 ·《시와경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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