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돌대가리라니
[특별기고] 돌대가리라니
  • 경남일보
  • 승인 2016.02.03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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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죽 우외호 (작가)
수석은 예술이다. 보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돌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30여 년 전의 일이다. 당시 어느 구둣방에 갔을 때 수반(水盤) 위에 놓인 경석(磬石)을 보게 됐다. 마치 작은 산을 옮겨 놓은 듯했다. 그때부터 돌에 매료돼 탐석을 위해 전국 각지를 유람했다. 약 500여 점을 수집, 수석에 담긴 지난 일들을 반추하며 마음의 여백에 희로애락을 그려나갔다. 하지만 지난 외환위기 때 투자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그것마저도 대물변제용으로 내놓게 됐다. 그때의 심정은 날 선 칼로 심장을 도려내는 듯했다.

어느 날, 지리산 하류 경호강에 탐석하러 갔을 때 만난 어느 괴물 같은 돌과의 인연을 잊을 수 없다. 필자는 탐석을 할 때마다 뒤에 따라간다. 앞서가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돌을 ‘이삭줍기’ 위함이다. 돌을 버리고 간 사람에겐 굴러다니는 돌로 보였겠지만 수석으로서의 충분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가끔 웃지 못할 여담도 있다. 탐석자 중에는 수석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음에도 안목이 서툰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수석의 석질, 모양, 색감 등을 보았을 때 전혀 손색이 없음에도 수석을 좀 알 것 같은 필자에게 돌의 작품성이나 가치를 묻는다. 필자는 돌을 이리저리 살피는 척하다가 가치 있게 보이면 ‘이게 돌이냐’ 하면서 길섶으로 던져버린다. 그 사람 또한 민망한 얼굴로 자리를 뜨는데, 그때 길섶의 돌을 냉큼 배낭 속에 넣는 행운을 잡는 것이다.

경호강에서 탐석한 이 괴석도 길섶에 던져 놓은 것을 다퉈 주워 담은 것이다. 이 돌은 전설에서나 나옴직한 괴물로서 얼굴이 세모이다. 눈은 사팔뜨기며, 마음껏 찢어진 입에는 흰 조개 뼈로 위 아랫니가 박혀 장난기 서린 성난 표정이라고나 할까. 분노의 절정에 선 코와 귀는 웃는 얼굴 모습에 닿지 않는 듯 아예 갖추지 않았지만, 낯빛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다채롭다. 몇 천만 년의 풍상에 자연의 신비를 표현하는 방법은 그밖에 없다는 인상을 짓고 있었다.

녀석은 수시로 인상이 바뀐다. 술이라도 한잔하고 볼라치면 비웃기로 하듯 째려본다. 고요한 밤중에 들여다보면 물소리, 바람소리, 세월이 오가는 소리가 귓전을 스치고, 물 향기, 이끼 향이 세파에 찌든 내면의 뜰을 청정하게 한다. 또 토끼가 잠든 흔적, 사슴이 오줌 싼 흔적, 햇살이 머문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겨울날엔 오들오들 떨기도 하며, 봄에는 꽃샘추위에 감기가 들어 훌쩍거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 녀석은 언제부터인가 우리 가족을 닮아갔다. 가정이 편안하면 이 녀석도 평온하다. 어쩌다 부부싸움이라도 할라치면 금세 울상을 짓는다. 식구들은 이 녀석의 눈치 때문에 가급적 재미나게 지내려고 한다. 필자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 녀석을 보며 탐석지에서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미련한 사람을 돌대가리에 비유하며, 냉정하고 반응에 느린 사람을 목석이라고 비유한다. 하지만 얼마나 잘못된 표현인가를 알게 된다. 돌대가리라는 말 자체가 속된 비유로서 그 사람의 인성을 말하는 것이다. 맨 처음 돌대가리라는 비유를 썼던 이도 보석도 돌이라는 사실을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비유를 바꿔 무딘 사람을 ‘보석대가리, 수석대가리’고 하면 기분이 좋을까. 돌이 지닌 자연의 신비를 헤아려보지도 않은 채 즉흥적으로 내뱉었던 말임을 알게 된다. 돌을 굴러다니는 돌로만 볼 수는 없다. 한 점의 괴석이지만 자연이 빚어 놓은 형상을 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을 가져보면 어떨까.
 
송죽 우외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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