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7 (84)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7 (84)
  • 경남일보
  • 승인 2016.02.10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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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7 (84)

호남의 가출 소식을 듣는 순간부터 양지의 머릿속에서는 줄곧 어머니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딸보다 먼저 달려 온 소식을 접하고 입술이 타도록 노심초사하고 있을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있는 듯 선했다.

참 박복한 여인. 살아온 인생의 공과에 관계없이 지지리도 인덕 없는 여자. 자식들이라고 있는 것들은 맘 편하게 하는 건 하나도 없고 하나 같이 간 떨어지는 소식이나 전하고 욕먹을 일만 저지르고….

어머니의 성품을 잘 아는 양지는 정남의 일도 그래서 숨기기로 작정한 터였다.

‘우찌된 일인지 그 아가 요새는 전화도 통 없고 명절이 지나도 집에도 안 오고, 무신 일이나 있는 기 아인지 모리겄다’

여름에 어머니로부터 그런 말을 듣자 양지는 아픈 마음을 숨기고 통박부터 주었다.

‘걔도 인제 홀로 서기 해야지. 학교 다니고 회사 다니기도 바쁜데 전화할 여가가 어딨어. 부모 복 없는 애들이 저나 열심히 해서 홀로 서야지. 내가 그렇게 시켰어. 엄마도 무소식이 희소식이거니 여기고 엄마 몸이나 아픈 데 없이 잘 지키고 다스려요’

부모 복 없는 애라는 말에 머쓱해진 어머니는 더 이상 양지 앞에서 정남의 일을 들먹이지 않았다. 어머니도 정남의 자취방을 찾아갔다 이사한 것을 알았을 수도 있건만 언니가 왔더란 얘기를 주인댁에게 들은 대로 양지와는 내왕이 있는 것으로 짐작하는지 여러 달이 지나도록 정남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전화는 다시 하지 않았다.

양지는 가로수 밑이 의지처인양 소복하게 모여 있는 가랑잎 한 움큼을 주워들었다. 불빛에 비춰 보았지만 찬미할 만한 색깔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손아귀에다 힘을 주어 오므리자 거친 엽맥만 남고 연한 부분은 마른 소리를 내며 부서져 버린다. 손안에 든 것을 일없이 흩날려 버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제일 나은 축에 드는 자식인 양지 자신은 특별히 골머리 썩힐 일은 저지르지 않는 대신 인정이 메마르고 냉정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일 년에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 집안 안부를 챙기는가. 꼽아보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숫자다. 남의 큰자식으로서 결격이 많다 싶다가도 그녀는 어느 새 고개를 젓는다. 나는 큰자식이 아니야. 숨어있던 또 하나의 그녀가 그녀에게 구원을 보낸다. 집에 가보지 않은 지도 꽤 여러 해가 됐다.

그건 집을 멀리하는 거리감과 함께 어머니를 그만큼 망각하고 산다는 말도 됐다.

되도록 멀리하고 잊은 채 살고 싶은 고향, 그 속에 사는 어머니. 그런데 어머니의 끄나풀은 길게 뻗어서 자식들을 매달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깐에 비하면 너무 질겨서 쉽게 잘라지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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