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7 (85)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7 (85)
  • 경남일보
  • 승인 2016.02.10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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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7 (85)

‘죽어라, 죽어라, 내 자식의 명줄을 한 치씩 끊으면서 나는 초오(독초의 일종)를 찧었다. 그 아로, 이 한 많은 세상에서 구하는 길은 그 길밖에 없다꼬 생각하니 무서운 것도 없고 두렵은 것도 없었다. 세상 사람들한테 이리저리 천대받고 사람대접도 몬받고 짐승매이로 사느니 이 에미가 죄를 또 한 번 짓는 거로 이 세상을 훨훨 떠나보내자 결심하니 지옥 불에 떨어진다케도 겁날 게 없더라. 얼매나 정신없이 몽돌을 내리 찧었는지 아픈 줄도 모르게 손가락을 찧어서 피멍이 꺼멓게 맺혔고……. 아아로 끌고 낮에 파 둔 구덩이 속에 저와 나 단둘이 들어앉았다. 저를 먼저 멕이고 뒤에는 내가 마시고, 온전히 저를 품에 안고 드러누울 작정이었다. 약에 넣을 사카리 가루를 손가락에 찍어주니 이게 입맛을 다시며 자꾸 더 달라고 하길래 약에 여어서 주마했더니 손을 뻗어 어서 저 죽을 약을 먹겠다고 보채는 모양이라니…. 이 죄 많은 에미, 이 천진난만한 것을…. 나는 그만 약 그릇을 떤지삐맀다…’

. 한실 유 씨 댁에 다녀 온 날 밤, 뜨거운 눈물 가득한 눈으로 어머니가 실토한 말이었다.

한실, 거기는 셋째 언니 용남이 시집가서 사는 집이었다. 배냇병신으로 팔다리가 흐느적거리고 헤벌린 입에서 항상 침이 질질 흐르던 기억밖에 양지의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은 그 언니는 손이 귀한 그 집으로 처음에는 양녀라는 이름으로 옮겨가서 살았다. 음양의 이치도 바보답게 늦게 깨우쳤는지 뒤늦게야 아이들을 줄줄이 낳아 주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삼 대 독자인 언니의 남편 역시 어릴 때 가지고 놀던 폭발물 사고로 실명을 하고 말았기에 아이들은 모두 조부모 내외의 책임 하에서 길러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대가 끊길지도 몰라 애태우던 그들은 비록 병신 딸이지만 기님 없이 허혼을 준 어머니에게 늘 감사하고 있었다

팔순을 앞두고 있지만 아직도 정정한 사돈 내외를 보고 온 어머니도 모처럼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 어른들 살아생전에 큰 아이만이라도 제 가족 건사할만큼 장성을 하게 되면 애물단지 용남언니에 대한 걱정도 한 시름 놓게 되겠다던 어머니…. 개똥도 약에 쓸데가 있다더니…. 생각만 해도 시어른들께 복을 짓고 사는 용남언니를 무척 대견스러워 했다. 어머니는 그 때 술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청했다.

“너거 아부지한테는 술 못 자시게 함서-”

어머니는 천천히 음미하듯 한 컵의 소주를 두 번으로 나누어 마셨다. 힙뜨게 웃으며,

“내가 너가부지 눈기시고 몰래하는 게 오직 이거 두 가지다”

말한 뒤 담배도 한 대 피워 물었다. 감정이 몹시 고양되어 있었던지 그날 밤 어머니는 평소의 그니 답지 않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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