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7 (89)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7 (89)
  • 경남일보
  • 승인 2016.02.1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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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7 (89)

환갑 밑자리 깐 늙은이라고 어머니는 스스로 노티를 낸다. 그 나이 또래의 도회지 여자들은 어떻게 삶을 즐기고 사는 지 예를 들어 보이며 꼬드겨도 물밑에 가라앉은 차돌멩이처럼 어머니는 도무지 뜨지를 않는다. 호남의 이죽거림을 듣고 있노라면 어머니는 여자가 아니다. 천리를 중시한 어머니는 한 가문의 종부가 지켜야할 도리를 가학성 취미로 지켜냈는지도 모른다.

호남은 막내 정남이 객지로 떠난 것을 계기로 어머니와 정남과의 동거를 추진하는 제법 옹골찬 계획까지 세우기는 했으나 막상 실천 단계에 들어가 어머니 선에서 제지를 받고 말았다. 어머니는 너거 아부지를, 하며 외롭게 혼자 떨어져 살게 될 남편의 수발에 대한 핑계를 대다가 딸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자 이번에는 절대로 조상이 계신 곳을 떠나서 될 사람이 아니라고, 자신의 몸 하나에 무겁게 실려 있는 조상의 영혼을 들먹이며 다달이 행사가 빠진 날 없는 달력의 동그라미를 짚어 보였다.

‘내가 너것들 성의를 모리나 어데, 나는 인자 걱정 없이 살 끼다. 너그들 보고프모 한바꾸 휭 둘렀다 오고 맘 편하기 산께 에미한테는 신경을 쓰덜말고 너그들 사는 기나 맘 허투로 묵지 말고 살도록 해라. 그 기 바로 이 에미가 바래는 기고 너거가 이 에미를 생각는 기다’

양지는 호남이 들려주는 어머니와의 끝없이 계속되었던 설전을 듣기 거북해서 호남의 말을 자르곤 했다.

‘우리가, 우리가 잘 돼서 꼭 한번은 감옥 같은 곳에서 엄마를 구원해 드리기로 하고 지금은 엄마 의견을 존중하기로 하자. 비록 남 보기에는 장님 막대기처럼 대책 없이 답답하게 사는 것 같아도 어머니에게는 그게 거역할 수 없는 일상인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는 양지를 보고 호남은 발끈 화를 냈다. 언니는 저만 생각하고 인정머리가 없어서 결론을 그렇게 내린다는 거였다. 양지는 호남의 그런 격론에도 반론을 제기 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양지의 짐작으로 밝혀보건대 어머니는 노상 멋을 모르는 천치성 옹고집은 아니었다. 어쩌면 누구보다 더 상황판단이 빠르다는 것이 어머니에 대한 올바른 인식일 것이다.

어머니의 장롱 밑에는 처녀 적에 매었던 여러 개의 궁초댕기도 꽃 속에 날개를 접고 잠 든 나비처럼 곱게 반듯하게 간수되어 있었다. 조각 베로 만든 헝겊모음 주머니에 들어있는 알록달록 고운 비단 헝겊도 숨겨놓은 보석만큼이나 어머니의 고운 꿈을 대변해 주는 것들이다. 누구보다 상황인식이 분명하고 탁월한 자제력의 소유자가 어머니였다.

대 이을 자식을 봐야한다는 그럴 듯한 핑계로 들뜬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던 한 때만 해도 어머니는 모자라는 가용 돈을 쪼개서라도 동백기름을 사서 머리에 바르고 아버지가 집에서 잠자는 날은 정결하게 목욕을 하고 무색옷을 차려 입었다. 아버지가 ‘겨자씨’라고 표현했던 것도 그 무렵의 어머니를 두고 지은 별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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