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7 (91)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7 (91)
  • 경남일보
  • 승인 2016.02.1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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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7 (91)

어른들이 가라니까 시집을 갔고, 친정집에서야 아무리 금지옥엽으로 자랐지만 남편이 백정이면 피 묻은 짐승의 뒷다리라도 잡아주며 그 집에서 살다 그 집 귀신이 되어야한다는 가르침대로 어머니는 과연 자신의 인간적인 정체성에 대한 어떤 각성도 오기도 없이 사는 것일까. 이해되지 않는 삶 때문에 어머니는 늘 멀게만 느껴졌다. 마음이 지척이면 천리도 지척이며 마음이 천리면 지척도 천리라는 말이 있듯, 마음의 천리밖에 있는 어머니가 천리 밖 만 리 밖으로 먼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양지는 상처를 숨기듯이 옷깃을 여미며 가슴 깊은 곳에다 어머니를 숨겼다.

조락의 슬픈 여운을 끌며 낙엽은 떨어지고, 달리는 기차처럼 겨울이라는 이름의 냉각된 터널 속을 통과하기 위해 가을은 간다. 하아. 한숨을 뿜어내며 어제보다 더 앙상해진 벚나무를 바라보다 양지는 자신도 몰래 흠칫하며 가방 끈을 움켜쥐었다. 어쩜 내가 그런 생각을. 마치 남의 글을 훔쳐보고 외운 듯이 쑥스러움이 몰려왔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더러 양지는 자주 괴이한 감상에 빠져들곤 했다. 생애 처음으로 이상한 가을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 앞에도, 앞에도 가을이라는 계절은 무수히 스쳐갔다. 색색으로 물들었던 나뭇잎들은 서서히 탈색되어 바람을 맞고 떨어졌다. 수확 몇 프로를 알리는 뉴스 보도를 따라 가을은 진행되고 매상금액이 너무 낮아 인건비도 안 나온다며 울상을 짓는 검고 주름진 얼굴들 뒤로 가을은 막을 내렸다. 그저 그렇게 일 년 사계절 중의 하나, 특히 단풍놀이가 제격인, 그리고 더위와 싸우지 않아도 되는, 또 책 한 권쯤은 의무적으로라도 읽어야 될 독서의 계절, 준비 못하고 겨울을 맞이해야 되는 가난한 서민들을 허전하게 만드는 계절일 뿐인 가을. 그런데 이번 가을은, 특히 오늘 밤 같은 경우에는 흐르는 물처럼 가슴을 적시며 나무들의 흐느낌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른 봄 싹 터서 조롱조롱 꿈을 키우면서 살았는데, 우리는 왜 가랑잎이 되어 이렇게 뿔뿔이 흩어져야 돼. 왜, 왜, 왜….

정남의 딸 수연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 탓인가. 정남이 살았을 때의 그 날이 새삼스럽게 아쉬움을 몰고 왔다. 어쩌면 내 부주의로 정남을 잃은 것은 아닐까. 현태의 말대로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정남을 지키게 했던들 그렇게 어이없이 다시 떠나보내지는 않았을 것을.

마음이 허해지면 망상이 판을 친다. 조금이라도 짬이 있으면 눈을 감게 되고 눈을 감으면 기다리고 있었든 듯 그날의 일들이 되살아났다.

퇴근을 하고 늦게야 병원으로 오자 정남과의 이별은 이미 양지가 의식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진행이 되고 있었다.

“최 정남씨 보호자 되시죠?”

산부인과 간호사실 앞을 지날 때였다. 주사약과 일회용 주사기를 챙겨 담고 있던 간호사가 손을 멈추고 양지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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