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7 (93)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7 (93)
  • 경남일보
  • 승인 2016.02.10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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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7 (93)
 
그림 김지원


그제야 집히는 게 있는 듯 간병인 여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정남이 쪽으로 경계의 눈길을 보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애기가…, 그런 줄도 모르고…”

“애기요? 애기를 봤어요?”

“그런 줄도 모르고 보여줬지요. 에미가 새끼 보고 싶은 거야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럼 왼팔도 봤어요?”

“거기는 아직 강보로 돌돌 말려 있으니 얼굴만-. 앞으로는 그 점 특히 조심할께요”

불상사의 꼬투리가 어렴풋이 감잡혔는지 여자는 자기단속으로 말을 돌렸다.

“알면 충격 받을만하지. 손가락 숫자나 제대로 인지 머리에 다리가 붙어 나오는 건 아닌지, 첫 아기 낳은 산모들은 모두 불안한 법인데…. 그나저나 수술이나 할 수 있으면 좋지만 돈 깨나 들겠수. 그렇더라도 산모 보는 데는 절대 그런 눈치 보이면 안 되우. 그런 일 더러 봤는데 환자가 잠들었다고 아무 말이나 병실에서 하면 안돼요. 환자들이 가족들 눈치 읽는 데는 빠삭해요. 돈 잃고 사람 놓치고, 아무튼 환자보다 간병하는 가족들이 더 생병을 앓는 다니까요”

간병인은 묘하게 자기의 업무를 격상시켜 놓는다. 내일 아침에는 덤으로 수고 값이라도 올려줘야 마음이 편할 듯하게 봉사하는 마음보다는 일로 이력이 난 티를 은연중 드러내 보인다.

“이거 하나 드실래요? 나 먹으라고 그 청년이 사왔어요. 총각이 나이도 그만하면 지긋하고 마음씨며 허우대가 하나 빠진데 없이 좋습디다. 언니가 남편 복 하나는 탔던데요. 미루지 말고 어서 식 올려요. 도장 콱 찍어서 꿰매 놓은 물건도 퍼뜩퍼뜩 손 타는 세상인데…”

어지간히 말이 고팠나보다. 양지가 먹겠다하지도 않는 큰 사과를 두 개씩이나 깎아 놓으며 간병인 여자는 환자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야기로 입을 다물지 않는다. 양지는 은근히 그 여자의 입에서 정남과 같은 경우의 이야기가 나오기를 바랐다.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어떤 상식이라도 얻고 싶었다. 그러나 여자는 낮 동안의 긴장을 푼 방심한 자세로 현태가 사왔다는 과일만을 우적우적 씹어 먹는다. 간간이 이상한 듯 양지의 눈치를 살피기도 한다.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은 낌새를 눈치 챈 듯했다.

“아주머니, 이제 집에 가서 쉬세요. 택시비 드릴께요”

양지는 지갑에서 천 원짜리 석 장을 꺼내 여자에게 건네주었다. 여자가 반색을 했다.

혼자 있고 싶었다. 잠 든 정남을 들여다보며 앞으로의 일들도 생각해 봐야한다. 공치사를 들은 여자는 뭘 이렇게 택시비까지, 코에 주름을 잡으며 웃어 보인 뒤 현태가 자기 먹으라고 사왔으니 다 가져 갈 셈인 듯 남은 사과를 비닐봉지에 챙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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