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7 (94)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7 (94)
  • 경남일보
  • 승인 2016.02.10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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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7 (94)

[내일 아침 출근 전에 일찍 올께요, 아까 보니까 잠시도 비워서는 안되겠더라구요“

여자는 또 골치 아픈 중증환자의 간병인임을 주지시키기를 잊지 않는다. 휴지통을 들여다보고 물병에 든 물의 양을 확인하고 여기저기 자신이 잊고 빠뜨린 일이 없는지, 보아란듯이 한 번 더 점검을 해본 뒤 나갔다.

텅 빈 듯한 입원실 내부를 둘러 본 양지는 소리 나지 않게 정남이 누워있는 병상 옆에 앉았다. 정남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고르게 오르내리는 가슴의 동계만이 그녀가 살아있음을 알려 준다. 아직 장애까지는 모르지만 인공발육기 속에 든, 아직 아이 같지도 않은 제 아기를 보는 순간 많이 놀랐을 것이다. 게다가 부진한 채로 멎어버린 신체의 일부를 발견한 순간 어미가 받는 충격은 앞으로 어떤 사태를 불러올지도 알 수 없다. 잊은 듯 잠자코 있었던 주위들에 대한 분노 억울함이 폭발한 것도 정남의 입장으로선 너무 당연한 감정의 표현이다. 그러나 미친년, 미친년, 타인들의 반응은 그렇게 나온다. 사회의 인식이란 얼마나 피상적이고 표피적인가. 정남의 일이 만약 자기네 자식들의 일이라도 그렇게 단정적으로 매도할 수 있을 것인가.

옆자리에 있던 산모는 정남보다 여섯 살 위였고 그 역시 초산이었다. 첫 아기인데 아들을 낳아서 시어머니 되는 오십 중반의 여인은 며느리의 친정 식구들까지 고마워 어쩔 줄 몰라 했다. 연락부절로 벙글거리며 드나드는 친척들, 남편의 동료들까지 꽃이며 선물을 들고 와 수북하게 쌓아놓았다. 벽을 보고 누워 잠든 듯이 있었지만 정남의 감각기관은 그쪽으로 열려 무방비 상태의 자극을 받은 것이다.

양지는 피로한 눈을 감으며 이마를 받치고 침상에 엎드렸다. 어머니에게 이 일을 알리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일까, 그와 반대일까. 역시 잘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어머니에게, 그 가슴 아린 일 많이 겪고 사는 어머니를 다시 또 이렇게 첩첩하게 가슴 찢어지게 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와 마지막으로 전화를 주고받은 것도 지난 봄 호남이 가출을 했던 사건 때문이었다.

‘주엥이에미 그게 안 갔나? 그 년이 또 집을 나갔단다’

어머니와의 통화는 본론보다 넋두리가 더 길다. 그 년이 글쎄, 그리 간 큰 짓을 지 혼자 독단으로 저지르고 있는 줄 상상이나 했겄나. 호남이 주영을 낳은 지 반 년 만에 피임 수술을 받았음을 말할 때였다. 그때도 양지는 수화기를 어깨와 머리에 끼운 채 두뇌와 손으로는 제 할 일을 멈추지 않았다.

‘사부인은 충격을 받아서 몸져누웠고 며느리란 거는 집을 나가고…. 나는 딸자식 잘못 키운 죄인이 돼서 안사돈 대할 면목도 없고, 또 안사돈 안 나무랜다. 어느 시에미가 손자 욕심 없겠노. 그 양반이 그걸 안 이상 길래 안편할끼다. 지 년도 무슨 복안이 있었시모 각오를 해야제. 죄 지은 놈이 참아야지, 지가 뭘 잘 했다꼬 머리통 꼿꼿이 들고 일어서니 집안이 조용하겄나. 곧 죽어도 기 안 죽는다. 그게 성질이 좀 선머슴아 닮아 그렇지 세상에 인정 많고 부지런하고 나무랄 데는 없는데…. 하기사 다 내 탓이지. 에미가 좋은 뽄은 못 뵈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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