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 두 문화 현상을 넘어서: 알파고를 생각하며
[아침논단] 두 문화 현상을 넘어서: 알파고를 생각하며
  • 경남일보
  • 승인 2016.03.13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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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훈 (경상대학교 총장 직무대리, 철학과 교수)
서양의 과학을 받아들이고 독자적인 과학연구의 성과를 갖기 시작한 지 이미 상당한 시간이 경과하였지만, 아직도 자연과학은 우리의 문화적 전통에 토착화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자연과학은 세계를 바라보는 개념체계로서, 또한 삶의 방식으로서 우리의 정신생활 가운데 내면화되지 못하고 있다. 어느 대학 총장선거에 출마하였던 과학기술자가 무속인에게 가서 자신의 당선가능성을 점쳤다는 풍문을 듣고 씁쓸해지는 것도 그러한 현상의 일단을 보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이른바 ‘두 문화 현상’이 여전하다.

‘두 문화 현상’은 이미 20세기 중엽 영국의 문필가 C. P. 스노우가 그 현상의 본질과 문제점을 지적한 이후에 수많은 논쟁을 야기한 주제이기도 하다. 그가 말하는 두 문화란 과학문화와 인문학적 전통문화이다. ‘과학문화’란 과학기술에 바탕을 둔 문화를 말한다. 과학기술에 바탕을 두었다는 것은 과학적 사고와 방법, 과학적 태도와 지향, 나아가 과학적 합리성에 기반을 두었음을 뜻할 것이다. 전통문화란 과학문화와는 상이한 사고와 방법, 태도와 지향, 그리고 합리성의 척도를 지닌 전통적인 인문학적 문화를 말한다. 스노우는 이 두 문화의 실재를 인정하면서, 그것이 상호 배타적이고 단절적인 관계에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교육제도의 개선 등을 통해서 그 문화가 서로 만나는 접점을 마련해야 하고, 각 문화의 그룹들이 서로에 대해 이해와 아량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두 문화가 만나는 접점에서 인류의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에게 충격을 주고 있는 인공지능 알파고도 바로 두 문화의 접점에서 탄생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란 근대 철학자 라이프니츠가 창안한 ‘생각하는 기계’라는 관념과 컴퓨터 과학이 만나서 성립한 것이기 때문이다. 컴퓨터(computer)라는 말 자체가 사고한다(thinking)는 것과 계산한다(computing)는 것을 동일한 것이라고 보는 철학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을 계산하는 일이 아니라 ‘연결하는 일’(connecting)이라고 여기게 된다면 더욱 새로운 기능을 가진 인공지능을 만들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는 아직도 두 문화 현상이 여전한가? 그것은 자연과학을 우리의 문화적 전통과 융합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서양의 과학문화는 자연과학적 태도와 성과를 기독교적 신앙과 융합하고, 조화시키려는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서구적 과학문화와 우리의 전통문화가 서로 다른 사고 체계 혹은 언어체계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 중 어느 하나를 다른 하나로 환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서구적 과학문화와 우리의 전통문화가 우리의 삶 속에서 서로 고립되어 반목관계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 그것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조화되어야 하고, 상보적 관계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에른스트 캇시러의 말대로, 과학문화와 전통문화가 “악궁과 칠현금의 경우처럼 반대 속의 조화”를 찾을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한 모색은 두 문화에 속한 사람들의 허심탄회한 대화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대결이 그러한 대화의 단초가 되었으면 싶다.
 
정병훈 (경상대학교 총장 직무대리,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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