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8 (103)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8 (103)
  • 경남일보
  • 승인 2016.03.01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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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8 (103)

관혼상제에 대한 준칙이 내려진 후로 그런 화려한 장례는 볼 수 없이 간소화 되었다. 본가에서 장례를 치르기보다 대부분 병원의 영안실을 이용하기 때문에 무질서하게 보이던 예전 같은 잔치 마당은 사라졌다. 그러나 잘 살았던 업적에 따라 옛날 못지않게 죽음잔치는 펼쳐진다. 저 옆 상가도 자식들의 사회생활상에 따라 그에 못지않은 많은 숫자의 조문객들로 든발 난발 소란스럽게 현대판 잔치나 화수회 동창회가 열리고 있다.

그에 비하면 정남의 인생은 그야말로 애통하고 비참한 말로였다.

흐트러진 듯 멍한 표정에도 불구하고 양지의 의식은 명징 했다. 상처 난 정남의 사체를 들여다보고 죽음을 확인한 이후부터 그녀는 냉정해졌다. 차마 열거해서 입으로 뇌이기 싫은 모습이 수시로 떠올라서 시야를 어지럽혔지만 그것들은 그녀의 비통을 자극하는 어느 감각에도 연계되지 않았다.

양지는 입에 괴어있던 침을 말아 삼키며 불편한 자세를 고쳐 앉았다. 현태가 다가와 옆자리에 걸터앉았다.

“수찬이가 오면 운구해도 돼. 마지막 절차를 밟으러 갔으니까”

갓 태운 담배 냄새를 진하게 풍기며 현태가 일러주자 양지의 얼굴이 비로소 그쪽으로 돌려졌다. 그들은 좀 전에 입씨름을 하다가 현태가 자리를 비켜 나갔었다. 정남이 사고사를 당한 이후 내내 그들은 다투었다. 현태는 고향에 있는 양지의 어머니와 창규의 집에다 당연히 이 사실을 알려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양지는 극구 반대를 했다. 그녀는 도리라고 현태가 말하는 것들을 무시했다. 이제 와서 그들이 안다 한들 죽은 정남에게 덕이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물론 어머니는 너무도 놀라고 가슴 아픈 나머지 혼절을 할지도 몰랐다. 창규네 역시 생전에는 아무리 성가시게 여기고 거부했을망정 눈물 한 방울은 흘릴지 모른다. 그러나 그뿐이다. 그들의 기억에서 정남의 존재는 영원히 향기로워지지를 못한다.

매운 마음을 사려먹고 양지는 입을 다물기로 했다. 가여운 동생 ‘최 정남’을 위해서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자신의 입에서 죽음이 발설되지 않는 한 정남은 언제나 살아있을 것이다. 저 살기 편하게 잠적하여 아들 딸 낳아 기르면서 지금은 하나 둘 주름살도 늘었을 터, 어느 하늘 밑에서 재미있게 살고 있으리. 매몰차고 독한 것 소식 하나도 주지 않고…. 남아있는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그렇게 정남은 살아나갈 것이다.



양지는 잘 알지도 못하는 낯 선 강기슭에다 현태의 도움을 받으며 정남의 유해를 뿌리고 와서 자신도 모르게 허약해진 체력을 실감하며 쓰러져 버렸다. 죽음의 세계인지도 모른다는 느낌으로 비몽사몽간을 헤매었다.

남들도 다 이렇게 사는 게 힘들까. 정남의 죽음으로 인해 실제 생을 마감한 시체를 만져 본 기분은 또 다른 의미로 전달되었다. 양지는 내가, 우리 가족들이 혹시 천상에서 죄를 짓고 나온 천상의 죄인들은 아닐까,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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