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밍크코트
어머니 밍크코트
  • 경남일보
  • 승인 2016.03.14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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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섭 (중소기업진흥공단 홍보실장)
이창섭
25년전 제가 대학생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방학이라 대구 고향집에 잠시 내려와 있던 저는 어느 날 아버지 심부름으로 은행에서 돈을 찾아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은행 문을 나서자 등 뒤에서 “어이 학생, 잠깐 이리 와보게”라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거기에는 회사원으로 보이는 두 명의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이유인 즉슨 회사에서 슬쩍 가져온 밍크코트를 싸게 팔테니 헐값에 가져가라는 것이었습니다. 한 명이 차 안에서 저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하는 동안 한 명은 차 밖을 서성이며 두리번거리는 모습이나 유니폼에 달린 명찰이 가려져 있는 것이 수상해 영 마뜩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진짜 밍크라고 하면서 라이터 불을 옷에 붙여 보이며, 진짜 밍크털 냄새 한 번 맡아보라고 너스레를 떠는 모습에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게다가 어머니에게 새것으로 코트 한 벌 사드리면 앞으로 겨울을 따뜻하게 넘기실 거라는 얘기를 들으니 갑자기 어머니의 오래된 겨울옷이 생각나더군요.

대학교 1학년 시절 학교 잔디밭에 앉은 저에게 경상도 말씨를 흉내내며 다가온 아저씨한테 넘어가서 그다지 필요하지도 않은 책 한 질을 산 경험이 있는 저는 이번에도 그때처럼 그 옷을 덜컥 사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심부름으로 찾은 돈도 있었으니 주머니 두둑한 부자라도 된 것처럼 말이죠.

저렴한 가격에 밍크코트를 샀고 어머니도 좋아하실 거란 생각에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집에 돌아왔습니다. 어머니와 누나는 자초지종을 듣고 옷을 이리저리 살펴보곤 ‘아저씨들이 어린 너를 속였구나’하면서 야단은 치지 않고 그냥 크게 웃더군요. 몇 푼의 돈을 허투루 쓴 것이 아까웠겠지만, 세상물정에 어두웠던 순수한 막내아들의 마음 씀씀이가 싫지 않았나 봅니다.

어머니는 겨울이면 항상 그 ‘가짜 밍크코트’를 입고 다니셨습니다. 직장을 잡고 다른 옷도 많이 사드렸지만 어머니는 유독 그 밍크코트를 좋아하셨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찾은 고향집 옷장에 그 옷이 가지런히 걸려 있는 모습을 보곤 어찌나 옛 생각이 많이 나던지요. 유난히 춥던 올해의 겨울도 다 지나고 봄이 오고 있습니다. 매년 추운 겨울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가짜라 털이 숭숭 빠지던 밍크코트를 애지중지하시던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이창섭 (중소기업진흥공단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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