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8 (106)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8 (106)
  • 김지원
  • 승인 2016.03.01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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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8 (106)

자식을 해친 범인이 누군지를 아는 듯했으나 무엇엔지 두려움을 느끼며 떨던 명자언니의 할아버지는 필담조차 할 수 없는 백무식꾼의 한을 끓이다가 아들이 장성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

후환이 두려웠던 명자언니 작은할아버지도 멀리 고향을 떠났고-.

‘나 아니었으면 연변 그 먼 먼 곳에서 작은할아버지를 어떻게 찾아낼 수 있었겠어?’

재력으로 이끌어낸 자신의 능력을 앞세우고 개선장군처럼 득의만면해서 떠벌리던 명자의 도도한 음성도 마치 옛날이야기의 연장처럼 양지를 짓밟으며 되살아났다.

양지는 무엇으로든 그들로부터의 돌파구를 찾아야했지만 현실의 길은 막막하게 그녀의 앞을 막았다.

양지는 그나마 자신이 일군 책임 있는 직장에 대한 자부심으로 큰 힘을 얻는다.

직장으로 돌아와서 회사 일에 몰두하자 그런 대로 평화스러운 날들이 지나갔다.

명자언니가 깐죽거리는 일은 아버지와의 일이라고 밀어 제치자 그도 견딜만해졌다.

혈육의 유골을 제 손으로 처리하는 단장의 아픔도 환갑노인인 아버지가 기어코 다른 여자의 배를 빌어 아들을 얻었다는 충격적인 소식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자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인생살이의 한 과정들일 뿐으로 차츰 감정 정리도 수월해졌다.

양지는 출입문이 잘 보이는 구석자리에 앉아 따끈한 물 컵을 찬 손으로 움켜쥐고 입술을 댔다. 시간을 보니 현태와의 약속 시간은 아직 이십 분이나 일렀다. 성급했음이 드러났으나 시간을 때우기 위해 자리를 뜨고 싶지는 않았다.

엊그제는 이 찻집에서 현태의 부모에게 소위 선이라는 것을 보였다. 친구 부모한테 차 한 잔 대접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나오라는 데,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다 싶어 기다리는 그들의 앞으로 나갔다.

야아, 니가 그리 죽고 몬산단께 뭐라기는 좀 거슥하다만 너무 말랐다.

훤하고 퉁퉁하게 살이 찐, 부잣집 맏며느리 감을 원하고 있었던 듯 전라도와 경상도 어우름의 억양을 구사하는 현태의 부모는 양지를 보자마자 마침 호출을 받고 전화를 걸러 가는 아들의 귀에다 귓속말을 한답시고 옆자리에 있는 양지도 능히 듣게 우려를 나타냈다.

양지는 속으로 빙긋 웃으며 그들의 면면을 나름대로 살펴나갔다.

잠깐 나갔다 올게. 마치 같이 살던 아내에게 하듯 말해 놓고 현태는 나가고 양지는 어색한 기색을 숨기며 현태의 부모와 마주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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