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 이중섭, 김춘수, 유택렬과 흑백다방
[경일포럼] 이중섭, 김춘수, 유택렬과 흑백다방
  • 경남일보
  • 승인 2016.03.17 09: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점석 (창원YMCA 명예총장)
지난해 진해 중원로타리 곁에 있는 문화공간 흑백에서 화가 이중섭의 체취와 시인 김춘수의 마음을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졌다. 유택렬의 젊은 시절의 사진과 여러 권의 드로잉 화첩, 유품 등을 살펴봤는데, 그 가운데서 나무로 만든 자그마한 화구통이 눈에 띄었다. 경남도립미술관에서 발간한 유택렬 화백 도록(2005)에 실린 연보와 박석원 교수의 글에 의하면 월남하기 전인 1947년 유강렬의 권유로 금강산에서 그림을 그리게 됐는데 이곳에서 이중섭, 한묵 등과 만났고, 한묵의 집에 머물면서 화업에 몰두했다고 한다. 이때 이중섭은 자신이 쓰던 나무 화구통을 유택렬에게 주었다. 이중섭은 8살 아래인 후배에게 어떤 생각으로 화구통을 주었을까.

1950년 신계사에서 작품을 제작하던 중 6·25전쟁이 일어나서 유강렬과 함께 금강산을 내려와서 아버지, 남동생과 셋이서 월남했다. 유강렬은 사촌형이다. 어릴 때 함경남도 북청에서 같이 자라면서 각별한 사이였으며 유강렬이 동경미술학교 수학 후 귀국해 많은 영향을 주었다. 유강렬은 이중섭과도 막역한 친구사이였다. 1953년 통영 나전강습소의 교육책임자로 있던 유강렬이 이중섭을 초청했다. 이중섭은 본격적으로 소그림을 그렸고 마침내 걸작이 탄생했다. 한묵과 이중섭은 일본 유학시절부터 평생을 가까이 지냈다. 3년 전인 1952년에도 부산의 르네상스 다방에서 함께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60여년 전, 꽃의 시인 김춘수가 흑백을 찾아왔다. 어느 신문기사에 의하면 “1956년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혁명이 일어났단다. 소련군의 철수와 자유를 갈구하는 시민들의 함성이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오늘도 진해 해군사관학교 강의를 마치고 이곳에 와 차 한 잔을 한다. ‘소련군의 총에 맞아 열 세 살의 헝가리 소녀가…’ 라디오 뉴스를 들으니 소련제 탱크에 짓밟힌 헝가리인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 펜을 들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2500여명의 처참한 죽음과 어린 소녀를 기관총으로 쏴 죽였다는 걸 알게 된 김춘수는 진해 흑백다방에서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이라는 시를 썼다.

마산에 살면서 강의하러 자주 진해 나들이를 할 때였다. 그의 여섯 번째 시집 제목이기도 한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은 1957년에 사상계에 발표됐고, 시집은 1959년에 출간됐다. 그후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현실을 다룬 예외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시에는 요한 시트라우스가 등장한다. 마침 시를 쓰고 있을 때 그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이 시를 쓴 지 10년 후인 1966년 3월에는 사진작가 남기섭과 함께 흑백다방에서 시사전을 가질 만큼 김춘수와 흑백의 인연은 꾸준했다.

이중섭은 1916년생으로 세 명 중에서 제일 나이가 많다. 김춘수는 6살 아래인 1922년생이다. 유택렬은 김춘수보다 2살 아래인 1924년생이다. 흑백에서 이 세 명이 함께 만난 적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시기적으로 볼 때 이중섭이 통영에 머물던 1953~54년에 김춘수는 통영을 떠나 마산에 있을 때였으므로 진해 흑백(구 칼멘) 나들이가 여러 번 있었다. 미술평론가 최열은 ‘이중섭 평전’에서 통영에 있을 때 진해 흑백다방에서 유씨 형제 두명과 의미 있는 친교를 나눴다고 쓰고 있다. 김춘수가 쓴 이중섭에 관한 연작시 9편중에서 ‘내가 만난 이중섭’을 보면 1953년에 광복동과 남포동 찻집에서 이중섭을 만났다. 아마 더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을 것 같다.

 
전점석 (창원YMCA 명예총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