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8 (107)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8 (107)
  • 경남일보
  • 승인 2016.03.01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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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8 (107)

조합장이라는 직함을 이것저것 여러 번 거쳤는데 지금은 부조금 들고 지인들의 길흉사에 다니시는 게 소일이라는, 조금 어색한 순간이다 싶으면 연신 흠, 흠, 헛기침을 잘하는, 약간은 거만스러운 겉모습에 비해 속은 덜 야무져 보이는 현태아버지. 거기다 대면 곡식부대에다 옷을 입혀놓은 것 같은 두루뭉술한 몸매에다 검붉고 거친 살결이며 결코 여성스럽다고 할 수 없는 걸걸한 목소리의 현태 어머니는 소리 나게 커피를 마신다고 아까부터 바깥양반의 말없는 지적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아, 그냥 두시오, 물 한 모금에 목 메이것네 , 하며 막무가내로 자기주장을 꺾지 않았다. 꾸미지 않고 막하는 것 같으나 결코 천스럽지 않은 심지와 품성이 느껴지는 언행이다.

쓴 커피가 입맛에 거슬리는지 엽차로 입을 헹군 현태의 어머니가 차를 마시는 것으로 기초단계의 면담은 끝났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 갈 차례라는 듯이 정면으로 양지를 바라보고 앉으며 허리를 폈다.

“직장을 오래 다닌 것 겉은 디 만약에 결혼을 하모 그건 우짤 셈인고?”

직장 가진 신부감에게로 점점 줏가가 쏠린다는 세상인데 어쩌라는 셈인지, 어떤 의도의 물음인지 양지의 상식으로는 감이 얼른 잡히지 않는다. 의중을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을까 망설이는 사이에 현태의 아버지가 끼어들었다.

“요새 젊은 사람들 맞벌이하는 거 좋다닝깨 뭐…. 옷 사 돌라 화장품 사 돌라 쪼잔하게 사는 것보다 자기 용돈 자기가 벌어쓰믄 좋지 뭐”

“참 영감도 무슨 그런 말씸을 하시오. 언제 한 번 내 화장품 사주고 옷 사줄라꼬 애 써 보신 적 있어싰어요?”

아직 며느리도 되지 않은 처녀 앞에서 면박 당한 무안함을 꺼야 될 필요를 느낀 듯 현태아버지의 언성이 조금 날을 세웠다.

“아, 그거야 낭중에 저그들끼리 알아서 할 끼제 이 자리서 임자가 이라고 저라고 할끼 아닌께 그라지”

“참 하시는 말씸하고는. 와 이 자리서 그런 입장을 다 밝히서 되몬 되고 안 되몬 안 되고 기정을 낼 일이제, 우째 안할 소린교. 결혼이 어데 젊은 사람들 저거 좋다꼬만 되는 일이요? 부모 형제가 있고 우리는 어무니꺼정 계시는 마당인데”

그 말도 일리 없는 말은 아니라는 듯 입을 다문 현태의 아버지는 담배를 피워 물고 창문 옆자리에서 이마가 닿을 듯이 마주 소곤거리는 청춘 남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말이 나온 김에 꼭 이 말을 하고 잪었는데 내 말이 처자 생각하고 영 동떨어지거등 노까 예스까 분명히 말해도 내 하나도 서운하게 생각 안할낀께 그리 알고 들어 보소. 나는 분명히 신식 사람은 아닌께 캐캐묵다 싶은 구석이 분명 있을 끼라 하고 말하것소. 우리 동네는 감나무 배나무 서껀 과실나무가 엄청 많소. 땀신에 소싯적부터 도가 트도록 접붙이는 일로 내가 많이 했는디 그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다 이기요. 남녀 간의 결혼도 나무 하나 접붙이는 기나 똑 같다. 건강한 기주목에다 아가씨 맹키로 여리디 여린 접순을 살짝 끼우고 동여맬 때까지는 모두가 잘살기를 바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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