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8 (109)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8 (109)
  • 경남일보
  • 승인 2016.03.01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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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8 (109)

“헛, 거참“

눈을 부릅떠 보지만 본 척도 않는 아내 때문에 다시 현태의 아버지는 한 방 맞은 듯 머쓱해진 기색이다.

”어른은 그만 잠자코 계시 보이소“

저력이 느껴지는 현태어머니의 목소리가 다시 현태아버지의 간여를 막는다. 알아서 하라는 건지 피우던 담배를 끄고 다시 담배 한 대를 피워 문 현태아버지는 화장실 쪽으로 자리를 피했다.

“내가 와 여자가 직장 생활하는 데 이런 소리를 하는고 하모 내 딴에는 일리가 있어서 하는 소리라. 여자가 아무리 나서서 돈 번다 캐도 숱밥 내삐고 낱밥 좌묵는기라. 한 마디로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라 이기제. 내가 와 이런 소리를 하는고 하모 우리 동네 면서기 집에 이런 일이 안 있었나. 여자가 참 악바리라서 집에 놀아도 그냥 안 놀고 뜨개질을 해서 팔고 가루비누 삼푸도 어데서 가져오는고 가져다 팔고 하다못해 남의 밭에 가서 감자 이삭을 주워도 줍더니 어데 직장에 취직을 하더라꼬. 그란께 먹는 기야 입는 기야 첨에는 아아들이고 어른이고 기름이 돌고 빛이 나더마. 그란데 웬 걸 큰아가 중고등 핵교 가니깨 그만 사달이나데. 하루는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싰는디 근 열흘이 넘게 아아가 결석을 해서 학교에 안 나온다는 기라. 쎄빠지게 돈 벌어서 돌라는 대로 하숙비야 용돈이야 대준 에미한테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제. 처음 만난 처자한테 이런 이야기를 해서 좀 뭣하기는 하다만 그게 책가방 들고 핵교 안 댕기서 가방끈 짜린 우리도 깨우치는 사람 사는 이친 기라. 나쁜 친구들 어울리서 술 담배 묵고 뽄든가 뭔가 그런 것도 했다카는데 환장 안 하것나. 자슥 정신 병원에 여어놓고 논밭 전지 팔아서 뒷돈 대봐야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도 안 막아지게 안됐나. 말이 난 김에 이야긴디 내 판단이 너무 구식이라꼬 우리 딸아들도 그런 소리는 하네만 요새 여자들 많이 배왔다꼬 납디는 쏙을 모리것어. 와 서푼이라도 돈을 벌어와야 똑똑한 여자 대접을 받는다꼬 밖으로만 나돌라카는지. 시변도 참 큰 시변이라닝께. 내 말이 틀린 거는 아니제?”

여느 직장 손님을 대하는 듯 얼굴에다 미소는 담고 있었지만 잘못된 생각을 조목조목 꼬집히고 있는 듯 한 불편한 기분이 들자 양지는 마른침을 삼켰다.

‘당신은 아닐지 모르지만 당신네들 구시대 시어머니들이 조장시킨 풍조잖아요. 집에서 살림 사는 며느리는 공도 빛도 없고 집안 행사에 봉사는 커녕 참석도 안하다가 선물 한번 사오는 며느리는 수고한다고 아랫목 자리에 앉힌다던데요’

따지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았다. 그러나 말을 주고 받다보면 상충되는 부분이 한 둘 아니게 생각의 차이가 많은데 이 자리는 그런 토론을 전제로 만난 자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마치 양지가 아주 며느리나 된 듯이 결기 있고 진지해진 표정으로 현태의 어머니는 말을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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