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8 (111)
양지는 오늘 인생의 반전을 꾀하는 심정으로 이 자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왠지 좋은 예감은 들지 않았다. 자신이 뭔가를 착각하고 들떠있는 것 같은 기분에 지배당하고 있음이다.
나이 삼십까지만 해도 그녀는 확고부동한 독신주의자였다. 남존여비의 오랜 질곡에서 허우적거리는 거의 노예화된 가련한 여성들의 무지와 무의식을 질타하며 개선의 깃발을 들고, 우후죽순처럼 돋기 시작하는 신선한 여성운동가들의 행렬에 열성껏 머릿수라도 동조를 했다.
그러나 독신인 그녀의 선배들은 끝까지 선구적이지 못했다. 조건 좋은 혼처가 나오면 입 싹 씻고 가정으로 들어앉는가 하면 오류의 검증도 없이 자기 뜻에 따르는 남자들만 신사로 친다.
실제로 은퇴한 독신녀들이 제 이름으로 등기 된 집 한 채와 현금 얼마를 믿고 외롭게 늙어 가며 히스테리컬 해지는 모습은 볼품없이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여성들의 복잡다단한 심리는 어머니라는 이름에서만 빛이 날 뿐이다. 여러 곳 전전해 본 직장에서의 예만 해도 여직원들은 승진이나 봉급의 차등을 불만하면서 한편으로는 또 여자의 신체적이고 환경적인 조건을 들먹이며 남자로부터 보호받기를 은근히 바란다.
실제로 양지 역시 지금은 ‘우먼파워’를 탈회한 거나 다름없다. 삶의 올바른 방향을 모르니 갈팡질팡이었다.
“에미 애비도 구분 몬 하는 에린 걸 놀이방이다 학원이다 쉴 여가 없이 쫓아내서 공부만 시키니 사람사는 모양이 아이제. 요새 텔레비전이고 뭐고 맨 그런 문제들 아이가. 뭐이 잘몬돼도 한참 잘못됐다 카이. 자슥들 장래는 뭐니 뭐니 해도 에미 교육에 달릿는기라. 옛날에는 없던 그 많은 여자 박사들 선생님들은 다 뭐하고 있노 말이다. 내 남의 자슥들 두고 이런 말 하기는 주제넘은 기제만 도대체 결혼하고 사흘도 안 살아보고 이혼하는 여자들이 많다는 거 그거는 우찌 해석해야 되것노. 몬 배우고 못난 우리들보다 많이 배앗다카는 표가 뭐있노 그 말이다. 내사마 요새 아아들 말로 가방 끈은 쥐꼬랑지도 없고 오빠들 등너머로 겨우 국문이나 깨우친 게 다다만 한 오십 년 넘겨 살다보니 인생이 뭔지는 대강 보이더라. 인생은 절대로 최고가 없다. 글치만 잘산 인생은 있다. 니 그걸 알아야 된대이. 잘산 인생은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이름이 하늘 겉이 높은 것도 아니고 학식이 최고로 높은 것도 아니다. 사방오방으로 어울리서 얼매나 조화로 잘 이루었는고 그걸 봐야 된다.”
조화. 양지는 아직도 귀에 젖어있는 현태어머니의 음성을 상기해 보았다. 그라면, 그런 여장부의 아들이라면, 영육을 순화시켜서 살아낼만한, 다른 남자들한테서 접해 보지 못한 어떤 가치를 발견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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