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플러스 <140>구례 견두산
명산플러스 <140>구례 견두산
  • 최창민
  • 승인 2016.03.24 0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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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꾸는 꿈' 산수유마을 지나 봄산을 오르다
▲ 산수유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작가 김훈은 ‘자전거 여행’에서 산수유를 이렇게 표현했다.

이른 봄, 가장 일찍 꽃을 피우는 것 말고, 노란 꽃이라는 것 말고, 나무에 꽃이 핀다는 것 말고 별 특징 없던 산수유가 고등한 작가의 사유를 관통한 뒤에는 이렇게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한다. 어떤 이는 이 꽃에 대해 아찔한 꽃 멀미를 안겨 준다고 했다. ‘영원한 사랑’이라는 꽃말 때문에 변치 않는 사랑을 맹세하기 위해 산수유 꽃이나 열매를 연인에게 선물하는 풍습이 전해온다. 견두산 오르는 길 구례 산동면 현천마을에 산수유가 지천으로 피었다.

견두산은 전북 남원시 수지면 고평리와 전남 구례군 산동면 계천리에 걸쳐 있는 산. 높이 774m이다. 구례 북쪽에 위치하며 남원과 경계를 이룬다.

정상부와 9부 능선에는 기암과 넓은 암반이 형성돼 있고 아래에는 숲이 울창하다. 무엇보다 조망이 일품이다. 지리산 반야봉, 만복대, 노고단 등 지리산 주봉과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원쪽 9부 암릉에는 고려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3.2m높이의 마애여래입상이 있다.

옛날에는 호랑이 머리를 닮아 호두산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호상 때문에 남원에 호환과 화재가 많이 발생하자 전라감사 이서구(1754~1825)가 이를 막겠다며 호석을 세우고 견두산으로 개명했다. 이후에는 재앙이 없어졌다고 한다. 수지면 고평리 고정마을에 견두산을 바라보고 있는 호석이 남아 있다. 또 산봉우리가 개의 머리와 같이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유래도 전한다.


 

▲ 갯버들 꽃

▲등산로, 구례 산동 현천마을→편백숲→현천삼거리→경주김공홍희지 묘→수지면 고평방향 갈림길→견두산 정상→계척봉→자귀나무쉼터→밤재→임도→19번산업도로 밤재터널 하산. 7.5km 휴식포함 5시간 소요.

19번 도로를 타고 구례군 산동면사무소 부근을 지나 1km쯤 가면 오른쪽으로 빠지는 샛길이 나온다. 이어 굴다리 밑을 통과해 산 쪽으로 오르면 산수유로 유명한 현천마을이다.

▲오전 10시 23분, 지리산둘레길 코스이기도 한 현천마을에서 출발한다. 서북쪽 제일 높은 곳에 허옇게 빛나는 암석이 견두산이다. 마을엔 정자나무, 저수지, 마을 노인정이 있다. 1960년대에 100여호가 어울려 살았던 큰 촌락이었으나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도회지로 떠나고 40여호만이 남아 오순도순 살고 있다.

마을 뒷산 견두산이 한자 ‘현(玄)’을 닮았고, 마을 뒤에 흐르는 계곡은 옥녀가 빨래를 하며, 어부가 고기를 낚는 형국이라는 이른바 어옹수조(魚翁垂釣)지형이어서 ‘현천’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탄생했다. 특산물이 밤이다.

안길을 따라 관통한 뒤 산에서 흘러내리는 작은 계곡에 닿는다. 이곳에 있는 등산로 이정표는 견두산 표시는 없고 ‘현천재 2.1km, 밤재 5.5km’만 새겨져 있다.

계곡과 연접해 시멘트임도가 나있다. 길옆에는 산수유가 피었고, 계곡엔 갯버들이 특유의 솜털꽃(버들개지)을 키워내고 있었다.


 

▲ 토종벌을 채집하기위해 설치한 벌통



임도가 끝나고 산에 접어들면 산수유는 대신 삼나무 편백나무 숲이 반긴다. 80년대 조림한 것인데 상큼한 초록의 향기를 쏟아내 겨울의 삭막함을 상쇄해준다.

여기저기 삶의 흔적이 남아 있다. 자연산 토종벌을 수집하기위해 나무에 매달아놓은 벌통, 고로쇠 물을 받기위해 나무에 꽂아 둔 호스 등이다.

출발 1시간 후, 현천 삼거리와 현천재를 지나면 본격적인 오름길. 오른쪽 나뭇가지사이로 암석이 많이 노출된 견두산 자태가 보인다. 암석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 한그루가 삭막함을 거둔다.

견두산 마애여래입상(전북 유형문화재 제199호)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견두산 정상 100m못 미친 지점에서 좌측으로 돌아가면 5m높이의 암벽이 나오는데 암벽 하단 약 2.5m 지점에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불상의 높이는 3.2m,정도다. 남원 쪽을 바라보고 있는 이 불상은 고려시대 전·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낮 12시 17분, 정상에 다다르자 무덤 하나가 나타난다. 암석으로만 이뤄졌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20여㎡규모의 넓은 터에 잔디가 깔려 있다. 이정표는 이번 산행의 하산 지점인 밤재 4.1km를 가리킨다.


 

▲ 편백나무숲



좌우로 펼쳐지는 조망이 극과 극이다. 왼쪽 서북쪽에 춘향의 고장 남원시가지, 오른쪽에 지리산이 펼쳐져 있다. 가깝게 노고단, 조금 멀리 반야봉과 토끼봉이, 아주 멀리 구름 속에 천왕봉이다.

정상을 내려서면 300m정도 암석으로 이뤄진 등산로가 이어진다. 길을 살짝 벗어난 언덕에 자동차만한 크기의 바윗덩어리에 올라서면 산 전체를 굽어볼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40여명의 단체 등산객과 마주쳤는데 그들은 김해에서 왔다고 했다. 밝은 표정의 그들때문에 주변 사람들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계척봉을 지나 2시 40분, 자귀나무 쉼터에 닿는다. 인근 산악회에서 지붕 있는 나무평상을 설치한 것이다.

쉼터의 이름인 ‘자귀나무’는 여름이 되기 전 부채꼴의 분홍색꽃을 피우는 토종야생화이다. 꽃이 워낙 예쁜데다 밤에는 마주보던 꽃이 오므라들어 서로 껴안는 듯 한 모습을 연출해 부부금슬이 좋아지는 꽃으로 알려져 있다. 꽃말은 환희다.

오후 3시 13분, 밤재에 닿는다. 지리산둘레길 11코스 산동면사무소~주천마을구간에 있는 재다. 차량이 올라올 정도로 넓은 주차장이 있으며 정자 쉼터, 수도시설이 있다.

주변에 지리산 둘레 길을 열면서 세운 것으로 보이는 ‘생명평화경’이라는 글을 새긴 대형 간판이 서 있다.


 

▲ 견두산 9부능선 바윗덩어리


‘생명평화의 벗들이여, 생명평화의 근본이 되는 우주적 진리는…, 이것이 있음을 조건으로 저것이 있게 되고, 저것이 있음을 조건으로 이것이 있게 된다. 상호 의존성과 상호 변화성의 진리를 따라 생성 소멸 순환하다는 사실은 현재도 과거에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장문의 글이 난해한데 뭇 생명, 자연의 소중함을 강조한 글귀로 보인다.


밤재는 지리산 둘레길이 지나는 길목이지만 또, 남도 오백리역사 숲길이 지나는 길이기도 하다.

국토의 대종맥인 백두대간에서 분기해 국토 최남단 땅끝까지 연결하는 지맥길이다. 구례에서 시작해 곡성→화순→영암→강진→해남 땅끝까지 본선 271km, 지선 67km, 총 연장 338km 구간이다. 숲 구간 61%, 농로 31%, 도로 8%로 구성돼 있다.

밤재에선 임도를 따라 19번 산업도로 밤재터널까지 수월하게 내려갈 수 있다. 터널길은 일방통행로여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원점회귀를 위해 산동면에서 택시를 부르면 19번도로가 아니라 샛길을 따라올라 온다. 택시비 8000원.

산행을 종료했을 때 시계는 오후 3시 23분을 가리켜 정확히 5시간이 소요됐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견두산 정상부 암릉길 메인
gn20160309견두산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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