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속의 그이
핸드폰 속의 그이
  • 경남일보
  • 승인 2016.03.22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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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섭 (중소기업진흥공단 홍보실장)
이창섭
아내를 어떻게 부르십니까. 이름을 부르기도 뭐하고 또 어른들 앞에서는 호칭을 함부로 할 수도 없으니 다양하고 재미난 대명사들이 등장하는 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둘만 있을 때는 좀 자유롭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는 호칭이 꼭 걸립니다. 자녀가 있다면 ‘누구 엄마’라고 무난히 부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 많이 사용하는 ‘자기야’라는 호칭은 왠지 닭살이라 선뜻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여보나 임자라고 부르자니 실제 나이보다 더 나이든 느낌이 들어 싫다고 하니 은근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결혼한 다음날부터 ‘여보’라고 불렀습니다. 주위 친구들 앞에서도 그렇게 불렀더니 징그럽다고 면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몇몇 친구는 자기 아내들에게 ‘자기야~’라고 부르던데 저는 차마 ‘자기야’ 소리는 나오지 않더군요. 지금 생각하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어머니를 부르는 호칭은 ‘아요’였습니다. 아버지처럼 경남이 고향인 분들이 아내나 다른 사람을 부르거나 또 주목을 끌고 싶을 때 부르는 말이더군요. 진주에 내려와서 ‘아요’란 그 말을 다시 듣게 됐을 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더군요.

주제를 좀 달리해서 핸드폰 속에 아내는 어떤 이름으로 저장돼 있습니까. 얼마전 대학 선배들과의 모임 자리에서 만난 어떤 선배는 ‘허니(Honey)’라고 저장돼 있다고 하는데 주위사람들의 반응은 썩 좋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뭔가 낯간지러운 느낌이라고 말씀들 하더군요. 다른 선배들은 이름보다는 ‘마누라’, ‘마누래’가 주로 많았는데, 취기가 한껏 오른 어느 선배는 ‘여편네’라고 당장 고치겠다는 호기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아내의 번호가 어떤 이름으로 저장돼 있습니까. 반대로 아내의 핸드폰에 남편인 자신은 어떤 이름으로 저장돼 있을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가족 간에 서로 애정이 담긴 재미난 호칭으로 저장돼 있다면 전화가 올 때나 메시지가 올 때 휴대폰 화면속 그 호칭이 참 정겹고, 왠지 모를 설렘도 느껴질 것 같습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핸드폰 속에 아내는 어떤 이름입니까? 설마 ‘마누라’나 ‘마누래’는 아니시겠지요. 그렇다면 지금 당장 바꿔 보면 어떨까요. 돌아가신 아버지는 아마도 ‘아요’라고 저장하지 않으셨을까. 그게 궁금해지는 아침입니다.
 
이창섭 (중소기업진흥공단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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